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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시장•─삶이 머문 여행 2013. 1. 24. 15:19
서울 숭례문 일대(남창동)에 위치한 최고의 종합시장인
남대문시장을 들렸다.
예전에는 갈치조림을 먹으러 많이 찾았던 남대문시장은 그 추억을 기억하고 있을런지 모르겠다.
하지만 구석구석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주고 있다.
남대문시장은 '남문안장' 또는 '신창(新倉)안장'이라고도 불렸다.
그 기원은 조선 태종 14년(1414) 새 도읍지인 서울의 남대문 근처에 가게를 지어 상인들에게 빌려준 것이 시초였으며
1608년(선조 41) 포(布)·전(錢)의 출납을 담당하던 선혜청(宣惠廳)이
남창동에 설치됨에 따라 지방의 특산물 등을 매매하는 시장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데서 유래한다.
그후 이 시장은 1921년 3월 송병준(宋秉畯)이 조선농업주식회사를 설립하면서 정식으로 개시되었다.
개시 초기 거래물품은
미곡·어류·잡화·과실 등이었는데, 주로 거래되는 물품은 곡물류였다.
1922년 경영권이 일본인 소유의 중앙물산주식회사로 넘어갔으며, 1936년 3월 남대문시장에서 중앙물산시장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8·15해방 후에는 남대문상인연합회가 운영했으나
6·25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다.
서울이 수복된 후 다시 미군의 군용·원조 물자를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되어 활기를 띠었다.
6·25를 겪은 후 빈손으로 월남한 피난민들이 잿더미가 된
이곳에 몰려들어
천막을 치고 억척스럽게 상권을 장악하면서 한때 '아바이시장'으로 불리기도 했다.
남대문시장 상권의 70%는 북한 출신의 실향민들이 쥐고 있었으나 최근 젊은이들로 바뀌고 있다.
1953년 화재발생으로 시장이 전소되었다가
1958년 대지 약 1만 2,000평, 건평 약 2,000평 규모의 건물이 세워졌다.
1963년 남대문시장주식회사가 발족되었지만, 1968년 대화재가 발생하여 시장의 중심부가 전소되기도 했다.
규모는 대지 약 2만 2,000평, 건평 약 6만 8,000평으로 노점상에서부터 현대식 백화점에 이르기까지 상품을 고루 갖추고 있다.
건축자재와 가구류를 제외한 의류·식품·청과·잡화 등 모든 업종이 총망라되어 있고,
대부분의 상품을 직접 제조·생산하여
전국에 판매하며 새벽 3시면
전국의 소매상(중간 도매상)들이 모여들어 성시를 이룬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체제에서
매출이 절반 수준에 머무는 등 어려움을 겪었으나,
품질에 비해 가격이 싼 장점을 앞세워 자생 공동상표로 중국 등지에 제품을 수출하여 위기를 극복했다.
재래시장이 점차 위축되는 사회 환경 속에서 백화점식 서비스 강화, 첨단 판매기법 도입, 사이버 쇼핑시장 진출,
시장정보지 "월간 남대문시장"발간,
도매고객에게 회원권 발급,
독창적 디자인과 새로운 홍보전략 등으로 현대화·고급화를 이루어가고 있다.
2000년 3월 관광특구로 지정되었다.
글인용; 다음백과사전
남대문시장에는 먹거리도 많다.
오늘도 가메골만두 그리고 호빵...갈치조림등으로 배를 하나 가득 채운다.(ㅎㅎ)
먹거리, 볼거리과 많아 행복한 걸음이 되는 곳이다.
가메골만두로 하나 집어들고.....군것질삼매경에 빠진다.
"호떡집에 불났어요."
호떡집마다 길게 줄어 늘어서고 있다.기다리기 힘들어....(ㅎㅎ) 호떡 먹는 일이 왜 이렇게 힘이 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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