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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서원(華陽書院)충북괴산•─가장 한국적인..../조선의 서원 2008. 2. 15. 19:15
화양서원(華陽書院)소재지;충북 괴산군 청천면 화양리393-2(사적417호)
일생을 주자학을 연구하고 노론의 영수인 우암 송시열(1607~1689년)을 배향한 서원이다.
우암선생은 전국의 70여개 서원에 배향된 인물이다.
숙종 22년(1696년) 9월 사액을 받았고 42년(1716년)어필 현액을 받았다.
1703년(숙종 29년)명나라의 의종과 신종을 제향한 만동묘를 건립하였다.
1865년(고종2년)만동묘를 철폐하고
1871년(고종8년)비리의 온상인 서원을 철폐하였다.
운영담의 겨울정취가 운치가 있습니다.
화양서원 외삼문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는 정면 4칸,측면 2칸의 맞배지붕인 증반청이다.
화양서원의 사당이다.
훼철되기전에는 숙종의 어필인 편액이 걸려있었다.
화양서원 묘정비(충북기념물 제 107호)
숙종 42년(1716년)에 세워진 묘정비는 윤 봉구가 짓고 안진경의 글씨이다.
서원이 헐리면서 이 비석도 땅 속에 묻혔다.
▲ 암서재(지방문화재 제175호)
화양구곡의 제4곡인 금사담위에 지어진 우암의 독서당이다.
만절필동(萬折必東)만번 굽이쳐 흘러도 반드시 동쪽으로 흐른다.
중국은 서쪽에 위치해 더 높은곳에 있다고 여겨 상부의 나라라는 의미이다.
임진왜란 원군에 대한 은혜 표시로 해석되고 있다. 선조의 친필이다.
특히 화양서원은 횡포(남설,누설)가 가장 심했다.
서원에서 발행하는 화양묵패(華陽墨牌)라는것이 있었는데
묵패란 서원에 필요한 것들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서에 묵인을 찍어 보내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만일 받은 사람이나 관청이 재물을 바치지 않으면 최고 사형까지도 당했다고 하니
그 무소불이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 수 있다.
읍궁암앞의 3개의 비석들
대원군의 철폐령시의 명목은 1선현 1서원,전통깊은 명문서원,충절을 바친서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철폐시킨다고 했다.
하지만 화양서원이 대원군의 표적이 되었던 이유는 정치적인 세력을 척결하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본다.
화양서원의 전경이다.
정면 5칸의 팔작지붕인 이 곳은 풍천재이다.
유일하게 남았던 건물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인 전사청이다.
외삼문이다.
내삼문인 성공문(양추문)인데 중국의 천자를 상징한다 하여
9계단을 설치하였는데 굉장히 가파르다.
▲ 만동묘정비(지방기념물 제25호)
일본 넘들이 비석을 정으로 쪼아
땅에 묻은 것을 찾아내어 옛 자리에 다시 세웠다.
만도묘에서 바라본 화양서원의 사당과 숭삼문이다.
화양서원의 만동묘이다.
정면 5칸,옆면 2칸의 맞배지붕의 구조이다.
이 사우에는 명나라의 신종(임진왜란 때 조선에 원군을 보내준 임금)과
의종(명나라의 마지막 임금)의 위패를 봉안했다.
가지런한 정료대의 모습이 아름답다.
중앙의 화강암 계단이 예전부터 있었던것이다.
만동묘에서 바라 본 증반청,전사청,풍천재의 모습들이 한 눈에 들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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