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로서원(大老書院)경기여주•─가장 한국적인..../조선의 서원 2008. 1. 30. 21:20
대로서원(大老書院)
경기 여주군 여주읍 하리 200-1(시도유형문화재 제20호)
******조선 중기의 학자이고
노론의 영수인 우암 송시열(1607~1689년)선생을 배향하기 위한 서원이다.
정조 9년(1785년)에 사우를 창건하고 그 이름을 "대로사"로 사액받았다. 대원군은 서원철폐령시 노론의 거두인 송시열의 만동묘를 철폐한다.
전국에 44개의 송시열선생을 배향한 서원이 있었으나, 대로서원은 고종10년(1873년) 강한사(江漢祠) 라
이름을 바꾸어 철폐되지 않았고 신미존치때 남은 47개 서원중의 하나이다.
대로사 기적비와
대로사 추양재 기실비가 세워져 있다.
송시열 (宋時烈 1607~1689년)
그 무슨 말로 우암선생을 설명할 것인가?
차라리 말을 하지 않음이 그 분에 대한 예의는 아닐까.
우암선생은 조선왕조실록에 3,000번이상이나 거론되는 인물이다.
효종과 함께 북벌정책을 추진하였으나 승하하시자 중지되었고,남인을 척결하여 서인의 영수가 되었다.
이후 기년설등으로 여러곳으로 유배를 간다.
님이 혜오시매 나는 전혀 믿었더니
날 사랑하던 정을 뉘손대 옮기신고
처음에 뮈시던 것이면 이대도록 설우랴.
이후 서인이 재 집권하자
유배지에서 풀려 괴산 화양동(화양서원배향)에 은거한다.
하지만 기사환국으로 제주도(귤림서원배향)로 유배되어 있다가국문을 받으러 상경하는 도중에 사약을 받고 83세로 생을 마감한다.
秋陽濟는 현재 예절학교로 사용된다.
강한사는
정면 5칸,측면 4칸의 민도리 팔작지붕이며인데
4칸의 대청과 2칸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 대로사비(大老祠碑)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84호
비각은 정,측면1칸인 익공계 팔작지붕이다.정자의 지붕을 자세히 살피면 비각과 같은 모양인 것을 알 수 있다.
정조 11년(1787년)에 세운 비로, 정조가 친히 글을 짓고 글씨를 썼다고 전한다.
많은 사람들의 비문을 썼던 우암선생은 왕이 친히 썼다고 하니 그나마 생을 아름답게 마친 듯 하다.
대로사비에 앞면은 비의 명칭을 뒷면에는 비문을 새겼다.이 서원의 특징은 출입문인 장인문이 서쪽으로 나 있습니다.
특이한 구조이긴 하지만 여기에는 우암선생의 충절이 있습니다.
영릉(효종)을 바라보기 위한 것이라 전한다.
☞☞☞☞☞ 잠깐 고택 공부를 합니다.^^*
고택에는 반드시 창이 나는데 창은 머름대위에 설치합니다.
보통 머름대는 54cm정도인데 이는 사람이 누웠을때 두 배에 해당하는 높이입니다.
내삼문인 장린문(長隣門)을 지나면 사우가 나온다.
대로사의 현판은 사당 정면에는 규정각제학 김종수선생이 썼다고 한다.
우암선생은 문묘에 배향되었다.
그로인해 권력이 많이 남용되는 결과를 낳고자 말았다.
현재의 세상도 그런것 같다.
남의 힘을 믿고 자신이 휘두르는 칼춤에 정신을 놓고 있는건 아닌지.....그게 정치의 맛이랄까^^*
'•─가장 한국적인.... > 조선의 서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숭현서원(崇賢書院)대전유성구 (0) 2008.02.07 미호서원(渼湖書院)대전대덕 (0) 2008.02.07 예연서원(禮淵書院)대구현풍 (0) 2008.01.29 이양서원(尼陽書院)대구현풍 (0) 2008.01.29 도연서원(道淵書院)경남고성 (0) 2008.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