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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설레임 오사카성(大阪城)•─삶이 머문 여행/그리고 바다건너 2013. 3. 27. 06:27
오사카의 명물, 오사카성(大阪城 : 오사카죠)
사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오사카성이었다.
물론 아름다운 경도(京都)교토를 보기위함도 있지만 봄의 설레임, 벚꽃이 화려한 오사카성을 보고 싶었다.
조금 이른 오사카로의 여행
일주일만 늦었다면 만개한 벚꽃과 마주할 수 있었다.
아마 이번 주가
오사카성의 사쿠라(さくら)가 절정이리라.
오사카의 역사와 문화, 관광의 상징이며 시민들의 마음의 고향이기도 한 오사카성은1931년에 재건되어
1997년 봄 새롭게 정비하여 인기를 모으고 있다.
5층 8단의 덴슈카쿠(천수각)에는 야츠지모모야마(安土桃山)시대에 천하를 통일한 도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의 목상을 비롯해서,
무구, 의상, 병풍등 귀중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철근 건물로 높이는 46m이며, 5단까지는 엘리베이터가 운행되고 있다.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히데요시(풍신수길)이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하여 3년의 공사를 걸쳐서 완성한 난공불락의 오사카성은
그 당시의 그의 권력을 한 눈에 느낄 수 있다.
오사카의 명물,오사카성 (大阪城:오사카죠)
오사카성(大阪城)
大阪府大阪市中央区大阪城1番1号
평일에는 09:00~17:00 주말 09:00~17:00까지 입장할 수 있다
글인용 하나투어,다음여행정보,모두투어,오사카성홈페이지,위키백과사전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부터 에도 시대의 성이다.
다른 이름은 긴조 (金城) 혹은 긴조 (錦城)로, 과거에는 오사카(大坂)가 근대와서 오사카(大阪)로 표기하도록 개정되었기 때문에,
현재에는 오사카(大阪)라고 많이 표기하고 있다.
또, 과거에는 오자카라고 읽었지만, 현재에는 오사카로 많이 읽혀진다.
도요토미 정권의 본성으로 있었지만, 오사카 전투에서 소실되었다.
그리고, 그 후, 에도 시대에 재건을 해 에도 막부의 서일본 지배의 거점으로 삼았다.
성이 있는 곳은 현재 오사카 시 주오 구의 오사카조공원 (大阪城公園)이다.
구마모토 성, 나고야 성과 더불어 일본 3대 명성중 하나이다.
오사카 성은 도요토미 가문이 축성한 성과 도쿠가와 가문이 재건한 성의 배치가 다르다.
현재 볼 수 있는 건물의 배치는 모두 에도 시대의 것으로 도쿠가와 가문이 축성한 것이다.
단, 해자와 문 등의 위치는
도요토미 가문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성의 형식은 윤곽식 평성으로, 혼마루를 중심에 두고 외성을 동심원으로 배치했다.
그 사이에 내측 해자와 외측 해자를 두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오사카 시가지에서 천수가 잘 보이도록 천수의 위치와 도로의 배열등을 궁리했다고 전해진다.
대지의 북단에 축성한
오사카 성의 방위상의 약점은 대지의 높이가 같은 남쪽이다.
그래서 서에서 남으로 해자를 만들어 성을 감쌌고, 다마쓰쿠리 문의 남쪽에 반월형의 외성 사나다마루를 축성했다.
역시나 오사카 성의 남쪽이 오사카 겨울전투의 격전지였다.
△ 이누이 망루와 해자
해자의 폭은 좁게는 70m에서 넓은 곳은 90m가 된다.
수영을 잘 하는 사람도 건너기 힘들다.
성벽 100만개에 가까운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으며 그 길이는 자그만치 12Km에 달한다고 한다.오사카 성은 우에마치 대지의 북단에 위치해 있다.
대지의 북으로는 요도가와 강의 본류가 흐르고 있어 천연의 요새이고,
또, 수로로 일본 서부에서 교토지방으로 물자를 수송하려면 이 요도가와 강을 통해야 했기 때문에 교통의 요충지이기도 하다.
오사카 성이 위치한 대지의 북단은 북, 동, 서쪽의 대지보다 상대적으로 높았기 때문에 두루 조망할 수 있다.
그리고, 북쪽에서 흐르는
요도가와 강의 지류를 이용해 성 안 해자에 물을 채우기도 했다.
오사카성의 외문이다.
철문이라...ㅎ
이 철문은 예전에 군사기지로 사용한 흔적이라고 한다.
성의 정문을 들어서면 성인의 키를 넘는 거대한 바위로 성의 벽을 만든것을 볼 수있다.
해자와 함께 오사카에서 눈여겨 봐야하는 것이 성벽의 돌이다.
이 돌들은 이시가키라 부르는 돌인데
막부정치를 하던 '도쿠가와' 가문이 각 지방의 영주(다이묘)들에게
비용을 분담시키기 위해서 돌들을 운반하게 하였다고 하는데 우습게도 돌의 크기로 충성심을 가늠했다고 한다.이 성벽의 거대한 돌은
'다코이시'라고 하는데 평균두께 90Cm, 무게는 130톤에 이른다고 한다.
정말 대단한 충성심이 아닌가요(ㅎㅎ)
제 4사단 사령부였으며
(구)오사카 시립박물관이었으나 지금은 이관하였기때문에 폐쇠된 상태이다.
1945년(쇼와 20년) 8월 14일 공습에의해 교토역까지 피난민으로 인파가 밀려들었고, 피난민중 다수가 죽거나 부상을 입었다.
이때 마이니치 신문 오사카 본사 옥상에서 촬영한 천수각의 배경은
검은 연기로 뒤덮여 있었고,
그 후, 이 사진은 오사카 여름전투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복원된 천수는 소실을 면했다.
종전 후 성내의 육군요지가 연합군에 접수되었고, 1947년(쇼와 22년) 미군에 의한 소실로 기슈 어전은 소실되었다.
오사카성의 덴슈가쿠는 일본의 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 위로 올라가는 동안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생애와 유물들이 전시되어있어서 역사교육으로서도 중요한 장소로 여겨지고 있다.
맨 최상층인 8층에 올라가면
오사카공원이 한눈에 보이며, 먼곳을 전망할 수있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단....입장료를 지불해야한다.
어른은 600엔 중학생이하는 무료라고 한다.
현재 오사카와 오사카 성의 상징인 천수각은
1928년 당시 오사카 시장인 세키 하지메가 재건할 것을 주창해,1931년 성을 준공했다.
1930년대 이후 각지에 건설된 복원천수 1호였다.
건물은 도쿠가와 가문의 오사카 성 천수대를 기반으로
철골콘크리트로 건설되었다.
천수각의 안은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외관은 옛 그림을 토대로 새롭게 재탄생되었다.
오사카 성의 천수는 도요토미 가문의 오사카 성과 도쿠가와 가문의 오사카 성과는 건설된 장소도 외관도 전혀 다르지만,
복원된 천수각에서는 1층부터 4층까지 도쿠가와 풍으로 백색인 회벽으로 하는 한편,
5층에서는 도요토미 풍으로
흑색에 금박으로 호랑이와 두루미의 그림을 그려 넣었다.
이에 대해 여러 가지 논의가 있었고, 도요토미 가문의 형식으로 전부 통일해야된다는 주장도 있었다.
1995년부터 1997년까지 성을 대폭 개수했다.
이 시기, 구조는 한신.이와지대지진에 해당하는 진도를 견딜 수 있게 보강되었고, 외관의 벽도 다시 칠해졌다.
상처난 처마의 기와와 샤치호코,귀면기와의 금박도 다시 입혀졌다.
또, 단체관광객과 신체장애자의 편의를 위해 승강기의 운행구간을 연장했다.
1997년 국가 등록문화재로 등록되었다.
이번 오사카,교토,나라,고베여행의 관광안내를 맡았던
모두투어의 강 은진가이드님이다.
이때까지 다닌 여행중에 가장 즐거움과 행복을 많이 안겨준 가이드이다.
대만족이었다.
이 시간을 빌어 다시 한번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どうも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각설하고
강은진가이드가 포즈를 잡고 있는 대포는 오사카의 백성에게 시간을 알려주기 위한 포였다고 한다.
대포는 포르투칼에서 전해왔다는데
우리도 같은 시기에
대포를 들여왔다면 아마 임진년의 전후사정은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우물터이다.
지금은 말라버렸지만 예전에는 물이 가득하였다.
특히나 우물에는 황금을 넣어두었다고 한다. 만약 독을 타게 되면 황금이 해독작용을 한다고 한다.
이 우물은 이름은 '킨메이수이(金明數)'이다.
현존하는 성벽도 많이 남아있다.
에도 시대의 오사카 성은 에도 막부의 데쓰다이부신으로
건설되었기 때문에,
석벽에는 그 돌을 가지고 온 다이묘를 표시하는 각인이 남아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돌들은 세토내해의 여러 섬에서 가지고 온 것들이다.
그리고, 도요토미 가문의 오사카 성은 에도 시대 오사카 성을 축성할 때 파괴되거나 대지를 돋을 때 묻었기 때문에 현재는 볼 수 없다.
천수각은 예전에는 순금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18k도금이라고 하는데...그래도 그 규모가 대단하다.
도요토미히데요시의 실제 모습이라고 한다.
국내정치의 혼란함을 밖으로 돌리기 위해 임진왜란을 일으킨 토요토미히데요시는 원래 근본도 없는 출신이라고 한다.
이 마을 저 마을을 20세까지 바늘장사로
떠돌아다니다가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신발과 말을 지키는 일을 맡아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요다의 신임을 얻고 권력자가 되었다.
정유재란 중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않고 후시미[伏見]성에서 질병으로 사망했다.
그의 별명은 원숭이라고 한다.
엄청나게 닮았네....ㅎ
△ 오사카전투장면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가문을 공격하여 멸망시킨 전투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를 비운의 활복죽음으로 이끈 전투이기도 하다.
천수각에서 바라 본 오사카의 전경이다.
금빛으로 반짝이는 용의 얼굴과 잉어의 꼬리를 한 문양이 천수각의 난간끝에 장식되어 있다.
천수각을 화재로 부터 막아달라는 뜻이겠지.....ㅎ
일본인들은
지진,천둥,번개등을 가장 무서워한다고 한다.
그래서 천수각에도 번개를 막기위한 피뢰침들이 여러군데 만들어져있다.
아름답게 피어 내 마음을 설레이게 만들어 줄 화려한 벚꽃은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듬성듬성 핀 벚꽃...
그리고 매화들이 그 설레임을 채워주었다.
여행이 주는 즐거움.....항상 설레임이다.
오사카성에서 보낸 반나절의 시간이 삶에서 아주 행복한 순간으로 기억이 될 것 같다란 생각이 든다.
나는 또 꿈을 꾼다. 40대 중년을 넘겨버린 나이에 무슨 꿈이냐고.....ㅎ
하지만 꿈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과 다름없다고 같다고 하지 않았든가?
내 아름다운 행복한 꿈들을 실현시키기 위한 전지작업들을 오늘도 준비한다. 그 설레임을 기억하면서 일본여행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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