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박2일팀이 찾았던 경주 서남산걷기•─삶이 머문 여행/경상북(慶尙北) 2012. 2. 5. 18:17
경상북도 경주시 경주평야의 남쪽에 솟아 있는 남산은 산 전체가 문화재이다.
노천박물관이다.
서쪽에 선도산(仙桃山) 동쪽에 낭산(狼山)과 명활산(明活山)
북쪽에 금강산(金剛山) 등 많은 산들이 성벽처럼 둘러서 있는데 그중에 크고 높은 산이 남산이다.
남산에는 높이 494m의 고위봉과 468m의 금오봉 두 봉우리가 솟아 있는데
이 두 봉우리에서
흘러내리는
40여 계곡과 산발들을 합쳐서 경주 남산이라 부른다.
오늘은 "이재의와 함께하는 삶의 이야기" 회원님들과 서남산 답사여행을 왔다.
보리님내외분 그리고 hanna님...
오늘 함께하시면서 문화유물해석을 해주시는 바다 김정자님과 함께 하는 답사여행이다.
"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看則畜之而非徒畜也"
정조 때의 문장가인 유한준(1732-1811)선생이 당대의 수장가였던 김광국의 화첩
"석농화원(石農畵苑)"에 부친 발문에서 따온 것이며
유홍준선생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1권의 머리말 일부로 소개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오늘은 이 말에 대해서 전적으로 공감한 하루였다.
남산을 그리 올랐지만
오늘처럼 새롭게 다가온 날은 없었다.
"딱 아는만큼만 보였다.."
오늘의 답사코스는 삼불사(배리삼존불)-삼릉-냉골-삼선암-바둑바위를 올라 하산을 하는 코스이다.
일반적인 남산의 답사코스이며
얼마전 1박2일팀들이 유홍준선생과 함께 오른 코스의 일부이기도 하다.
삼릉계곡마애관음보살상(경북유형문화재 제19호)
경주 남산의 삼릉계곡에 있는 이 불상은 돌기둥 같은 암벽에 돋을새김한 것으로
연꽃무늬 대좌위에 서 있는 관음보살상이다.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있으며, 만면에 미소를 띤 얼굴은 부처의 자비스러움이 잘 표현되어 있다.손에는 보병을 들고 있어 보관과 함께
이 불상이 현세에서 자비로써 중생을 구제한다는 관음보살임을 알 수 있다.
불상 뒷면에는 기둥 모양의 바위가 광배역할을 하고 있는데
자연미에 인공미를 가한 느낌이다.
이 불상은 정확한 연대와 조각자가 알려져 있지 않으나, 통일신라시대인 8∼9세기 작품으로 추정된다.오늘은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립스틱을 바른듯
채색이 벗겨진 입술이 요염(?)하게 다가온 삼릉계곡마애관음보살상이다.
냉골 석조여래좌상
가사의 끈이나 매듭이 선명하다.1964년 8월 동국대학생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30m땅속에 묻혀 있던
관계로 원형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삼릉계곡선각육존불(경북유형문화재 제21호)
또 새로운 것과 마주한다.
엄밀히 말하면 육존불이 아니라 삼존불이 각기 다른 돌에 새겨져 있다고 한다.
이래서 알아야하고 배워야한다니깐.....ㅎ
자연 암벽의 동서 양벽에 각각 마애삼존상을
선으로 조각한 6존상으로
그 조각수법이 정교하고 우수하여 우리나라 선각마애불 중에서는 으뜸가는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오른쪽 삼존상의 본존은 석가여래좌상이며, 그 좌우의 협시보살상은 온화한 표정으로 연꽃을 밟고 본존을 향하여 서 있다.왼쪽 삼존상의 본존 역시 석가여래로서 입상이며,
양쪽의 협시보살상은 연꽃무늬 대좌 위에 무릎을 꿇고 본존을 향해 공양하는 자세이다.
이 2구의 마애삼존상은 만들어진 시대나 조각자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대체로 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되며
오른쪽 암벽의 정상에는
당시 이들 불상을 보존하기 위해 법당을 세웠던 흔적이 남아 있다.
삼릉계곡선각여래좌상(경북유형문화재 제159호)
미완성작품이라고 한다.
미완성이라
더욱 돋보이는 작품이라는 설명에 공감을 하게 된다.
삼릉계곡에 있는 높이 10m가량 되는 바위에 새겨진 앉아 있는 모습의 여래상이다.
서쪽을 향하고 있는 불상은 몸은 모두 선으로 그은 듯이 새기고 얼굴만 도드라지게 표현한 독특한 조각수법을 보이고 있다.
이 불상은 고려시대에 새긴 것으로 추정되며
이런 유형의 불상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경주 남산 삼릉계 석조여래좌상(보물 제666호)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 부근에는 큼직한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자리잡고 있다.
얼굴은 원만하고 둥글며, 두 귀는 짧게 표현되었다.
왼쪽 어깨에만 걸쳐 입은 옷의 옷주름선은 간결하고 아름답게 표현되었다.
허리는 가늘고 앉은 자세는 안정감이 있다.
대좌는 상·중·하대로 구성되었는데 상대에는 화려한 연꽃무늬를 조각하였으며
8각 중대석은 각 면에 간략하게 눈모양의 안상을 조각하였다. 하대는 단순한 8각대석으로 되어 있다.
8각의 연화대좌에 새겨진 연꽃무늬와 안상을 비롯하여 당당하고 안정된 자세 등으로 보아8∼9세기에 만들어진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보인다.
삼릉계곡마애석가여래좌상(경북유형문화재 제158호)
경주시 배동의 거대한 자연 바위벽에 새긴 앉아 있는 모습의 석가여래불로 높이는 6m이다.
몸을 약간 뒤로 젖히고 있으며반쯤 뜬 눈은 속세의 중생을 굽어 살펴보는 것 같다.
머리에서 어깨까지는 입체감있게 깊게 새겨서
돋보이게 한 반면
몸체는 아주 얕게 새겼다.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에 유행하던 양식의 마애불로 추정된다.(글인용;문화재청, 신증동국여지승람,경북신문)
여근석(산신당,上)과 남근석(下)이다.
이때까지는
왜 보이질 않았을까...ㅎ 여하튼 아주 재미있는 해설과 함께 즐거운 오후가 되었다.
옛날 국사곡 어귀에 외로운 할아버지가 살고 있었는데 가족을 잃고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동네아이들과 함께 했다고 한다.
특히나 이웃집에 사는 피리라는 소녀를 퍽이나 귀여워했다.
할아버지가
80세를 넘었을 때 피리는 어느 덧 처녀가 되었다.
어느 날 피리가 이사를 가고 할아버지는 피리를 그리워 하다 상사병에 걸리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그 괴로움을 떨쳐내지 못하고
피리가 이사간 동네가 보이는 나무에 목을 매고 죽어버린다.
이후 피리는 무서운 꿈을 꾸게 되었다.
뱀이 덤벼드는 소름끼치는 꿈..측은한 마음이 들어 할아버지가 죽은 바위를 찾는다.
그리고 그 곳에서 뛰어내린다.
피리의 영혼은 또 하나의 바위가 되어 큰 바위 옆에 나란히 섰으니 세상 사람들은 이 바위를 가리켜 상사바위라 한다.
바둑바위에서 바라보는 천년고도 경주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조금은 무안한 마음이 든다.
문화재를 사랑하고 답사를 한다는 사람이 이렇게 무지할 수 있을까(ㅎㅎ)
여긴 금송정(琴訟亭)터이다.
금송정은 금오산에 있던 정자인데 경덕왕때 음악가 옥보고가 거문고를 타며 즐기던 곳이다.
그는 후에 지리산 운상원에 들어가서 50년 동안 금법(琴法)을 배워, 신조 30곡을 지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이 곡을 탈 때 현학이 날아와 춤을 추었고, 그래서 현학금이라 이름했고,
이것이 나중에 현금으로 바뀌었다고 하였으나,
앞서“삼국사기”에서 말한 왕산악과 관련된 얘기를 변형시킨 것이 아닌가 싶다.)
함께 해 준 바다 김정자님께 감사를 전합니다.
칼국수도 맛있었답니다.
카페회원님들께도..멀리서 와주신 보리님내외분과 hanna님께도 다시 한번 감사함을 전합니다.
'•─삶이 머문 여행 > 경상북(慶尙北)'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주 오릉(慶州 五陵)의 소소한 봄풍경 (0) 2012.04.11 향긋한 봄맛이 입안 가득히 전해지는 청도 한재미나리 (0) 2012.04.06 박혁거세가 태어났다고 전해지는 경주 나정(蘿井) (0) 2011.12.06 세금과 장학금을 내는 나무...예천천향리 석송령 (0) 2011.11.11 고령가야(傳古寧伽)태조왕릉을 함창에서 만나다. (0) 2011.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