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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표충비는 큰일마다 정말 땀을 흘리는 것일까..자연현상일까?•─삶이 머문 여행/부산,경상남도 2010. 6. 11. 22:47
밀양 표충비는 큰일마다 정말 땀을 흘리는 것일까..자연현상일까?
어리석은 날이 있었다. 밀양 단장면의 표충사(表忠祠)에 가서 표충비를 찾았다.
나라가 어려울때 운다는 비가 있었는데.....
옆에 계신 스님께서 단장이 아니라 무안의 표충사(表忠寺)라고 하신 기억이 아주 오래전에 있었다.
표충비를 만나러 와야하는데
어떻게 하다보니 돼지국밥을 먹으러 왔다가 만나게 된다.
표충비(表忠碑)는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15호이다.
국가에 큰 어려움이나 전쟁 등의 불안한 징조가 보일 때에 비에서 땀이 흐른다 하여
‘땀 흘리는 표충비 ’로도 잘 알려져 있다.
돌담이 둘러진 비각안에 보존되어 있다.
사명대사의 충절을 기리고 있는 비로 일명 ‘사명대사비’라고도 불리운다.
▲ 밀양무안리 향나무(경남 기념물 제 119호)
3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1.5m, 가슴높이 둘레 1.1m 이다.
향나무는 원래 곧게 자라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이 나무는 원줄기를 자르고 옆가지가 팔방으로 뻗게 하여 녹색의 큰 나무 양산을 펼쳐 세워 놓은 것
같은 모습으로 다듬고 가꾼 형태이다.
이와 같은 모양으로
가꿔진 향나무는 전국에서 이곳 밖에 없다.
1738년에 사명대사의 5대 제자인남붕선사가 사명대사의 표충비(表忠碑)를 세운 기념으로 심었다고 한다
네모난 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맨 위에 머릿돌을 얹은 구조로, 특이하게도 비몸은 까만 대리석을 사용하였다.
비문에는 표충사(表忠寺)의 내력,
서산대사의 행적, 사명대사의 행적 등을 4면에 고루 새겨 놓아,
서산대사의 제자이기도 한 사명대사가 임진왜란 당시 스승의 뒤를 이어 의병을 일으켜 활약한 사실,
가토 기요마사와의 담판내용,
정유재란 이후 선조의 어명을 받들어
일본에 건너가 포로 3천여명을 데리고 온 사실 등을 적고 있다.
조선 영조 18년(1742)에 세운 비로 이의현이 비문을 짓고, 김진상이 글씨를 썼다.
앞면 윗쪽에 새겨 놓은
비의 명칭은 유척기의 글씨이다.
(자료발췌;문화재청)
밀양 표충비는 나라의 큰일마다 땀을 흘렸다고 한다.
1894년 갑오경장 7일 전, 1910년 한일합방 17일 전,1919년 3·1운동, 1945년 광복 14일 전, 1950년 6·25 발발 25일전,
1960년 4·19 혁명 당일에도 흘렸다고 한다.
이외에도 박정희 대통령서거와 무장공비침투때도,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때도,
이라크파병때도...
이명박대통령당선때도 흘렸다고 한다.
분명 우리나라의 큰일이 있을때마다 흘린다.
전체는 아니지고 일부지만....
개인적으로는
자연현상이든 실제이든 삶에 있어 모든 부분을 경계하면 좋을 것 같다.
나라를 돌보는 일도 소홀함이 없이
철저히 준비하란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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