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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조선의 국모다...명성황후기념관과 생가•─삶이 머문 여행/서울,경기(京畿) 2008. 1. 31. 14:47
명성황후기념관&생가
경기도 여주군,읍 능현리 250-2번지 (경기도 유형문형재 제46호)
구한말의 아픔이
되살아나는 이 곳은 명성황후의 생가이다.
우리의 역사가 유린되고 하늘이 울었던 날들로 인해 가슴이 미어지는 슬픔에 빠진다.
1895년 10월 8일 새벽
일본인 자객 토오가즈아키에 의해 시해되고
파란만장한 생을 마쳤던 명성황후가 출생하여 8살까지 살던 집이다.
원래는 1687년(숙종 13년) 왕의 장인 민유중(1630~1687년)의 묘역으로 세웠는데,
당시 건물로 남아있던 것은 안채 뿐이었다.
대소인 하마비가 세워져 있다.
이전에는 안채만 남았으나, 1995년 행랑채와 사랑채, 별채등을 복원하였다.
안채는 ㅁ자형 구조이고, 옆으로 독립된 ㅡ자형 별당이 있다.
행랑채의 툇마루가 앙증맞다.
생가의 전체적인 모습이다.
명성황후가 태어난 옛마을이란 뜻의 탄강구리비 이다.
1904년에 비석을 세웠다.
손을 들어 맞잡고 절하며 눈물을 머금고 썼다라는 글은 아들 순종의 친필이라 전해진다.
명성황후의 6대 조부로 숙종의 장인이며
인현황후의 아버지인 민유중선생 신도비이다.오른쪽으로 머리를 돌리고 있는데 민유중선생의 묘역을 바라보고 있다고 한다.
▲ 명성황후 추모비
기념관과 생가의 관람시간은 하절기에는 오전9시 ~18시, 동절기는 오전 9~ 17시까지이다.
입장료는 천원이다.
▲ 공연장(문예관) 이다. 160여석의 공연장(문예관)에서는
명성황후와 관련된 영상물을 상영하고 했다는데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명성황후(明成皇后, 1851(철종2년)∼1895(고종32년)본관은 여흥(驪興)이며 여성부원군 치록(致祿)의 딸이시다.8세에 부모를 여의었으나 "춘추"를 읽을만큼 총명하셨다.흥선대원군의 부인 부대부인 민씨의 천거로 왕비로 간택되셨다.대원군과의 정치적 대립이 있었으며 결국에는 대원군을 하야시킨다.이후 일본과의 대립각으로 민비및 친러세력을 제거하려는 일본 공사 미우라의 공작이 있게 된다.민비는 나이 45세로 시해되시고 시체가 불살라지는 파란만장한 최후를 맞이한다.1897년 명성황후(明成皇后)로 추존되고 1919년 고종이 승하하시자 2월 미금시로 이장되셨다.연못 속의 잉어들은 사람이 다가가자 몰려든다.
지네들 배고픈것은 저리 잘 알면서 이 생가터가 우리의 슬픈역사 라는것은 알고 있는 것일까?
현재 명성황후 생가
찾아가는길
영동고속도로 여주IC->시내방향(우회전)->전방150m지점->우회전(명성황후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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