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궁궐이 유형이 가장 많아 있는 세계문화유산 창덕궁(昌德宮)•─삶이 머문 여행/서울,경기(京畿) 2008. 3. 12. 07:04
창덕궁(昌德宮)
서울 종로구 와룡동 2-71 (사적 제122호)
▒
조선 궁궐중 하나로 태종 5년(1405)에 세워졌다.
당시에는 정궁인 경복궁이 있었으므로, 창덕궁은 하나의 별궁으로 만들어졌다.
임란후 경복궁,창경궁이 전소된 뒤 가장 먼저 지어졌고이후로 정궁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래도 다른 궁궐에 비해 가장 많은 원형이 남았으며 특히나 후원은 30%정도 유지되어 있다고 한다.
돈화문(보물 제 383호)
창덕궁의 정문으로 태종 12년(1412)에 지어졌다.
임진왜란 때에 불탄 것을 선조 40년(1607)에 중건하여 광해군 원년에 완공하였다.
돈화문은 현존하는 궁궐의 대문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추녀끝의모양은 아마 삼장법사를 위시하여
손오공,저팔계,사오정 순이라는 학설이 유력하다고 전한다.
금천교의 모습이다.
태종11년(1411년)에 조성된 다리이며
서울에 있는 다리중 가장 오래된 돌다리이다.
거북의 모양을 만들어 두었다.
진선문에는
예전에 신문고가 있었다고 전한다. 일제때 훼손된것을 최근에 복원했다.
인정전 (국보 제 225호)
창덕궁의 으뜸이 되는 건물이며 정전이다.
태종5년(1405년)에 세워진후 임란때 소실된것을 광해군 원년에 복원했다.
현재의 인정전은 순조 3년(1803년)에 중건하였다.
회랑의 모습이 아름답다.
하지만 일부만 복원되었다고 하니 옛모습은 정말로
어마어마 했을듯 하다.^^*
인정전의 어좌뒤에 있는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이다.
여기의 5개의 산은 백두산,금강산,묘향산,북한산,지리산이라고 한다.
인정문(보물 제 813호)
인정전과 함께 세웠으나 화재로 전소된것을
순조3년(1803년)에 세웠다.
선정문
선정전(보물 제 814호)
임금의 집무실이다.
세조 7년(1461년)에 세웠다가 여러차레의 화재로 인조 25년(1647년)에 재건하였다.
현재 궁궐에 남아 있는 유일한 청기와이다.
희정당(보물 제 815호)
임금의 침전으로 사용하였으나 나중에는 집무실로 사용하였다.
1917년 화재로 소실되었던것을
일제 나쁜 넘들이 경북궁의 강녕전을 휘손하여 여기다 새로이 지었다고 한다.
대조전(보물 제 816호)
왕비의 침전이다.
1920년 경복궁의 침전인 교태전을 옮겨 지은것이다.
특이하게 용마루가 보이지 않는다.
굴뚝의 모양이 모두가 아름답습니다.
덕수궁보다 더 세련되고 아름다운 모습에 굴뚝을 사랑하고 싶은 생각마저도 드네요.
성정각(내의원)
선정각뒤에 관물헌은 갑신정변이 일어난 곳이다.
낙선재
본래는 세자의 거처인 동궁이 있던곳이다.
특히 이 방자 여사가 1989년까지 거처하던곳이다.
수강재 뒤로 보이는 취운정이 소박하면서도 아름답다.
창살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특이한 문살이 마음을 빼앗는다.
석복헌은 헌종14년에 지어졌다.
특히나 헌종과 경빈김씨의 로맨스로도 유명한 곳이다.
비원(秘苑)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 조원시설이다.
성리학의 학문적 근거로 하늘과 땅을 배치하였다. 둥근 섬이 하늘이고 네모난 땅의 배치가 돋보인다.
자연적으로 아름답게 인공조성한 조선왕궁의 대표적 후원인 부용지이다.
저 뒤로 보이는 건물이 규장각이다.
정조가 취임하자마자 지은 건물이다.
특히 신하에게 시문을 짓게 하여 못짓는 신하에게는 유배를 보냈다고 한다.
어디로^^*
조기 보이는 섬으로 잠깐의 유배를 보냈다.
겨울이 끝나가려는 시간
부용지와 부용정의 모습이 아름답다.
'•─삶이 머문 여행 > 서울,경기(京畿)'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양평가볼만한곳, 들꽃수목원 (0) 2008.05.23 동구릉에는 아홉 왕이 계시지 않았다. (0) 2008.05.14 고종황제의 장수를 빈다는 뜻의 조선궁궐 덕수궁(德壽宮) (0) 2008.03.11 내가 조선의 국모다...명성황후기념관과 생가 (0) 2008.01.31 창경궁 (0) 2007.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