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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약령시(약전골목)를 씁쓸한 마음으로 걸었다.•─삶이 머문 여행/대구광역시 2011. 10. 3. 21:31
대구 남성로일대
즉 동아쇼핑과 현대백화점의 뒤편에는 조선시대 효종때 부터 열린 약령시가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대구 ·전주 ·원주의 약령시가 3대 시장으로 꼽혔다.
오늘은 대구의 명물"약전골목"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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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부터 경상감영안 객사주변에서 개시되어민족항일기를 거쳐 광복 후 얼마 동안까지 대구 ‘약전골목’ 일대에서 봄·가을 두 차례 개시되었다.
오늘날 대구약령시가 효종연간에 설치되었다는 데는 이견이 없으나, 발생요인에 대해서는 몇 가지 다른 주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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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령시 발생요인에 대하여
일본인 학자들이 주장한 일반적인 이론은
조정에 필요한 약재를 수집하기 위하여 1658년(효종 9)에 관찰사의 명에 의해 설치되었다는 설과
중국 또는 일본에
무역품으로서의 한약재를 수집하기 위해 설치되었다는 설이 있다.
옛 제일교회옆에는 약령시 한의학문화관이 자리하고 있다.
대구의 약령시의 역사와 발전과정, 그리고 한약에 대한 다양한 지식들을 알수 있다.
또한, 예전의 한의원의 모습과 여러가지
한약재를 손질하는 기구....
한약재의 종류, 효능 등에 대해 알려주는 애니매이션, 체질을 알아보는 프로그램등이 마련되어있다.
대구에서는 매년 한방문화축제가 열린다.
매년 5월쯤에 개최된다.
1658년 무렵부터 해마다 열리던 대구약령시는 개시 때마다
藥商과 醫員을 비롯한 전국의 한의약업인과 전체 지역민이 함께 어울려 약재를 사고 팔며 인심과 문물을 전하던 축제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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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령시 개시일이 다가오면
旅閣과 客主집은 전국에서 몰려오는 손님 맞을 준비에 여념이 없었으며
전국의 출시자 또한
약재매매와 만남의 설렘으로 밤잠을 설쳤다.
개시일에는 약령시 동ㆍ서쪽에
커다란 아치형 솔문을 만들어 세워 축제 분위기를 돋우었으며 한약재 매매외 일용잡화점도 덩달아 성황을 이루었다.
특히 약령시 주변의 여러 음식점과 술집 등에는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붐벼 야간에도 이들의 열기로 인해 밤이 깊어 가는 줄 모를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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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약령시 개장행사는
일제 강점기인 일부시기를 제외하고 약령시에서 지속적으로 열려왔다.
이와 같이 약령시 개장행사를 축제 형식으로 현대적으로 승화시켜 1978년부터 지금까지 이르게 되었다.
(글인용; 대구약령시 한방문화축제홈페이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네이버백과사전)
한약냄새가 진동하던 남성로일대가 존페의 위기에 놓이게되었다.
현대백화점의 대구진출로 인해 일대의 한약관련업소들이 폐업을 하거나 이전을 하기 때문이다.
백화점상권으로 인해
주변의 건물 임대료가 인상하게되고.....
350년을 지켜온 대구약령시..어떤 방법으로든 살아남아 약령시의 역사를 이어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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