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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세종대왕자태실•─가장 한국적인..../한국의 문화재 2010. 9. 28. 21:16
성주세종대왕자태실
소재지; 경북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산8번지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444호)
스치면서 수없이 봐 왔던 세종대왕자태실이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가봐야겠다란 생각이 들어 성주군 월항면으로 향한다.
태실을 수호하는 사찰이었던 선석사는 공사중이라 가질 못했다. 세종대왕자태실은 말 그대로 세종대왕 아들들의 태실을 모아 둔 곳이다.
세종의 적서 18왕자와
세손 단종의 태실 등 19기가 군집을 이루고 있다.
(태실은 왕실에 왕자나 공주 등이 태어났을 때 그 태를 넣어두던 곳을 말한다.)
전체 19기중 14기는 조성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나
세조의 왕위찬탈에 반대한 다섯 왕자의 태실의 경우
방형의 연꽃잎이
새겨진 대석을 제외한 석물이 파괴되어 남아 있지 않다.
▲ 화의군태실
장태시기 미상(세조 즉위후 파손)
세조 태실의 경우에는
즉위한 이후 특별히 귀부를 마련하여 가봉비를 태실비 앞에 세워두었다.
화의군 태실은 가봉비앞에 있다. 하지만 훼손이 되어 있다.
▲ 계양군 태실
1439년(세죵21년) 5월 24일 장태
▲ 의창군 태실
1438년(세종20년) 3월 11일 장태
재질은 화강암이고, 형식·구조는 연엽형의 개첨석(蓋첨石)(저경(底徑) 102㎝, 고(高) 42㎝)
구형(求形)의 중동석(中童石)(고(高) 26㎝, 하경(下徑) 80㎝, 상경(上徑) 75㎝),
방형(方形)의 연엽대석(蓮葉臺石)(변(邊) 125.5㎝. 고(高) 60㎝), 석함(石函)으로 이루어져 있다.
태실비문에
ㅇㅇ(대)군명태장 황명연호연월일입석(ㅇㅇ(大)君名胎藏 皇明年號年月日立石)
이라고 음각되어 있으며
세조가봉비 비문은 멸실(『실록』에 비문 수록됨)되었다.
조선 세종 20년(1438)에서 24년(1442)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태봉은 당초 성주이씨의 중시조
이장경의 묘가 있었는데
왕실에서 이곳에 태실을 쓰면서 그의 묘를 옮기고 태를 안치하였다고 한다.
한편 1977년 태실에 대한 보수시 분청인화문대접,뚜껑,평저호 및 지석등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세종대왕자태실은 조선초기 태실형태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며
우리나라에서 왕자태실이
완전하게 군집을 이룬 유일한 예라는 점
그리고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왕조교체와 함께 왕실 태실 조성방식의 변화 양상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글인용; 문화재청)
▲ 원손(단종)태실
1441년(세종23년) 윤11월26일 장태
▲ 영응대군 태실
1439년 (세종21년) 8월 8일 장태
▲ 임영대군 태실
1439년(세종21년) 5월 29일 장태
▲세조대왕 태실
1438년(세종20년) 3월 10일 장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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