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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뜨물이 가득 흘렀다는 미천골의 선림원지(禪林院址)•─가장 한국적인..../한국의 문화재 2010. 9. 1. 08:14
쌀뜨물이 가득 흘렀다는 설악산미천골에 자리한 선림원지(禪林院址)
소재지; 강원도 양양군 서면 황이리 424(강원도기념물 제53호)
2009년 1월의 어느 겨울날에 찾았던 선림원지를 다시 찾았다.
상원사 범종, 경주 에밀레종과 함께 통일신라 범종이 발견되어
더욱 유명한
선림원지는설악산 미천골에서
불바라기약수와 함께 많이 알려져 있다.
선림원지의 선림원은 804년경에 창건된 절집으로 크게 융성했으나 10세기경 큰 홍수와 산사태로 매몰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선림원지 삼층석탑(보물 제444호)
선림원지 부도(보물 제447호)
선림원지 석등(보물 제445호)선림원지 홍각선사탑비(보물 제446호)가 남아 있다.
미천골(米川谷)
이란 명칭은 선림원이 번성할때 스님들의 공양을 위해 쌀을 씻으면
그 물이 20리나 흘러 갔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선림원지 석탑은 보물 제444호이다.
진전사지 석탑과 생김이 똑같다. 아니 몇 시간전에 보았기 때문에 더욱 그리 느껴진다.상층 기단부에는 팔부중상이 새겨져 있다.
하지만
탑신부에는 부처(여래좌상)가 없다.
석탑의 상륜부는 노반만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보주도 보인다. 누가 얹어두었나? 형태가 조금 다른것 같다.
여러 장의 돌로 탑의 토대를 만들고, 아래층 기단을 올려 각 면 모서리와 중앙에 기둥을 새겼다.
위층 기단 역시 각 면 모서리와 중앙에 기둥을 새겼는데
한 면을 둘로 나눈 뒤 8부중상을 도드라지게 새겼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 돌로 되어 있다.
1층 몸돌은 높은 편이며, 2층 몸돌은 반으로 체감되고 각 몸돌의 모서리에는 기둥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넓은 편이고
지붕의 경사가 급하게 내려 오다가 처마의 네 귀퉁이에서 약간 들려 있다.
밑면의 받침은 5단이다.
탑의 머리장식으로는 노반이 있고
철제찰주을 꽂았던 구멍이 있으며 그 위에는 보주모양의 돌이 있으나 원형이 아닌 듯하다.
외형상 정제된 비례를 보여주지만8부중상의 조각은 섬약하고 석재의 구성도 규율성을 잃고 있다.
신라 석탑의 양식을 충실히 이어받고 있으나
기단부의 짜임이나 각 부의 조각수법으로 보아 조성연대는 9세기경 신라 후기에 가까운 것으로 짐작된다.
복원공사가 진행되기 전 기단부에서 소탑(小塔) 60여 기와 동탁(銅鐸) 1개가 발견된 일이 있다.탑 앞에는 안상을 새긴 배례석이 남아 있다.
(글인용;문화재청)선림원지 부도(보물 제447호)
기단부만 남아있다.
하지만 그 모습이 가히 눈을 다시 부비게 된다.
햐~~멋지다.
기단의 중대석의 용문양이 압권이다. 숨을 고른다.
중대석에서 운룡문이 보이는것은 이 부도가 처음이다.이 부도역시 1965년에 복원하였는데 이곳보다 더 높은곳에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절의 규모도 짐작이 된다.
▲선림원지 석등(보물 제445호)
이 석등은 신라시대의 전형적인 8각형식을 따르면서도 받침돌의 구성만은 매우 독특하여 눈길을 끈다.
아래받침돌의 귀꽃조각은 앙증맞게 돌출되어 아름답고, 그 위로 가운데받침돌을 기둥처럼 세웠는데마치 서 있는 장고와 같은 모양이며 그 장식이 화려하다.
즉 기둥의 양끝에는 구름무늬띠를 두르고 홀쭉한 가운데에는 꽃송이를 조각한 마디를 둔 후
이 마디 위아래로 대칭되는 연
꽃조각의 띠를 둘러 모두 3개의 마디를 이루게 하였다.
화사석은 8각으로 빛이 새어나오도록 4개의 창을 뚫었고, 각 면의 아래에는 작은 공간에 무늬를 새긴 매우 드문 모습을 취하고 있다.지붕돌은 8각의 모서리선이 뚜렷하며
추녀에는 아래받침돌에서 보았던 같은 모양의 귀꽃조각이 장식되어 있다.
경사진 면은 가파르지 않고 부드러운데 귀꽃조각과의 어우러짐이 자연스럽다.
꼭대기에는 연
꽃이 새겨진 머리장식의 작은 받침돌만 남아 있다.
지붕돌이 일부 탈락되긴 하였으나 완전하게 남아 있으며
전체적인 양식과 장식적으로 흐른 조각 등은
통일신라시대 작품인 개선사지석등(보물 제111호)과 거의 같은 모습이다.
같은 절터내의 홍각선사탑비(보물 제446호)와 함께 신라 정강왕 원년(886)에 세워진 것으로 추측된다.
선림원지홍각선사탑비는 귀부와 이수가 남아 있다.
보물 제446호이다.
홍각국사탑(弘覺禪師塔碑)에 대해서....
홍각선사의
공로를 기리기 위한 탑비이다.
선림원터에 있으며, 통일신라 정강왕 원년(886)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탑비는 일반적으로 비받침인 거북머리의 귀부와 비몸, 비머리돌로 구성되는데 이 비는 비받침 위에 바로 비머리가 올려져있다.
비문이 새겨지는 비몸은 파편만 남아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비받침의 거북은 목을 곧추세운 용의 머리모양으로 바뀌어있고, 등에는 6각형의 무늬가 있다.
등에 붙어 있는 네모난 돌은
비몸을 세우는 자리로 연꽃무늬와 구름무늬가 새겨 있다.
비머리에는 전체적으로 구름과 용이 사실적으로 조각되었고, 중앙에 비의 주인공이 홍각선사임을 밝히는 글씨가 있다.
홍각선사에 대해서는 자세히 전하지 않으나 비의 파편과 "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에 의하면경서에 해박하고 수양이 깊어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비문은 운철이 왕희지의 글씨를 다른 곳에서
모아 새긴 것인데
신라 후기에 왕희지의 글씨가 보급되었음을 보여주는 좋은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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