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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을 구한 신숭겸장군의 유적지•─삶이 머문 여행/대구광역시 2009. 5. 28. 23:25
신숭겸(申崇謙)장군유적지 소재지;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 526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 1호)
대구에 살면서도 가보지 못한 곳 알지 못했던 곳이 너무 많은것 같았다.
언젠가 천연기념물 제 1호가 무엇인가란
질문을 받고는 당황한 적이 있었다. 과연 무엇일까?
정답은 대구 도동의 측백수림이다.
이 정도로 모르고 살았던 대구이다.물론 살아가며 아무런 필요가 없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화재를 찾아 다니는 나로서는
조금은 부끄러운일이다.
신숭겸 유적지는 고려 개국 공신인 장절공 신숭겸 장군이 순절한 곳이다.
신숭겸장군은 배현경등과 함께 궁예를 내몰고 왕건을 받들어
고려를 개국하였다.
공은 그 뒤 장군이 되어 927년 고려태조10년에 신라를 침공한 후백제 견현을 물리치기 위해 왕건과 함께 출전하였다.
왕건이 이곳 공산전투에서
후백제군에 포위되어 위기에 빠지자 자신이 왕건을 가장하여 싸우다 전사하였으며,
왕건은 그틈을 이용하여 홀로 탈출하였다고 한다.
왕건은 장군의 죽음을 애통히 여겨 그의 시신을 거두어 지금의 춘천인 광해주에서 예를 갖추어 장례를 치렀다.
그리고 신숭겸이 순절한 이곳에
순절단과 지묘사(미리사)를 세워 그의 명복을 빌게하고 토지를 내려 이곳을 지키게 하였다고 한다.
표충사의 뒤로 보이는 산이 왕건이 피한 산이라 하여 왕산(王山)이라고 불린다.
왕건이 혼자 앉아 쉬었다는 독좌암(獨坐巖)
또한 인근에 파군재(破軍)는
왕건의 정예군이 후백제의 견훤에게 패 하였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탈출로를 비춰주었다는 반야월(半夜月),
이 곳에 왔어야 안심을 했다고 안심(安心) 어른들은 피난가고 어린아이들만이 남아있다하여 불로동(不老洞)
겨우 위험을 피해 한숨을 돌리고 얼굴을 폈다는 해안(解顔)이라
전해지는 지명이 아직도 남아있으니
이 곳 팔공산은 고려태조와 많은 인연이 있는곳임에 틀림이 없다.
지묘사는 고려의 폐망으로 폐사되었지만
1607년(선조 40년)에 경상도 관찰사 류영순이 폐사된 자리에 표충사, 표충단, 충열비를 세우고
서원으로 존립하게 되었다.
하지만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나 그의 후손들이 다시 건립하였다고 한다.
▲ 표충재(表忠齋)
표충사에는 신숭겸장군의 영정과 위패가 모셔져 있다.
▲ 상절당
▲ 신숭겸나무
▲ 표충단(表忠壇)과 비각(碑閣)▼
표충단은
신숭겸장군이 태조 왕건 대신에 죽은 곳을 기리기 위해 세운것이다.
찾아가는길 경부고속도로-동대구JC->대구-포항간고속도로->팔공사IC->팔공산방면->신숭겸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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