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원고구려비와 중앙탑•─가장 한국적인..../한국의 문화재 2007. 12. 18. 18:29
중원고구려비(中原高句麗碑)소재지;충북 충주시 가금면 용전리 입석부락 280-11(국보 제205호)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구려 석비로, 장수왕이 남한강 유역의 여러 성을 공략하여 개척한 후 그 기념으로 세웠을 것으로 추측된다.
1979년 입석마을 입구에서 발견되었는데, 오랜 세월이 흐르기도 했지만비의 중요성을 몰랐던 동네 주민들이 우물가의 빨래판으로 사용하기도 하여 발견된 당시 비문이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석비는 돌기둥 모양의 자연석을 이용하여 4면에 모두 글을 새겼는데, 그 형태가 만주에 있는 광개토대왕비와 비슷하다.
비문은 심하게 닳아 앞면과 왼쪽 측면 일부만 읽을 수 있는 상태로,내용 중 처음에 ‘고려대왕(高麗大王)’이라는 글자가 보이는데 여기에서 고려는 고구려를 뜻한다.
고구려 영토의 경계를 표시하는 비로, 백제의 수도인 한성을 함락하고 한반도의 중부지역까지 장악하여
그 영토가 충주지역에까지 확장되었음을 말해준다. 또한 역사적으로 고구려와 신라, 백제 3국의 관계를 밝혀주는 귀중한 자료로서,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유일한 고구려비라는 점에서 커다란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중원탑평리칠층석탑(中原塔坪里七層石塔)소재지;충북 충주시 가금면 탑평리 11 (국보 제6호)
남한강의 아름다운 경관과 잘 어우러져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으로, 당시에 세워진 석탑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우리나라의 중앙부에 위치한다고 해서 중앙탑(中央塔)이라고도 부르는 이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7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높은 탑신을 받치기 위해 넓게 시작되는 기단은 각 면마다 여러 개의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고,
탑신부의 각 층 몸돌 역시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몸돌을 덮고 있는 지붕돌은 네 귀퉁이 끝이 경쾌하게 치켜올려 있어 자칫 무겁게 보일 수 있는 탑에 활기를 주고 있으며,
밑면에는 5단씩의 받침을 새겨 놓았다. 탑 정상의 머리장식은 보통 하나의 받침돌 위에 머리장식이 얹어지는
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에서 벗어나, 이중으로 포개어진 똑같은 모양의 받침돌이 머리장식을 받쳐주고 있다.
기단에서의 기둥조각 배치, 탑신의 몸돌과 지붕돌의 짜임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인 8세기 후반에 세웠을 것으로 추측된다.
전체적으로 규모가 커서 웅장하기는 하나 너비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듯 하여 안정감은 덜하며,
세부수법이 약화되고 섬약해져 있어 당시의 경향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1917년 탑을 보수할 때 6층 몸돌과 기단 밑에서 사리장치와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특히 6층 몸돌에서 발견된 거울이 고려시대의 것으로 밝혀져
탑 조성 이후 고려시대에 와서 2차 봉안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료출처;문화재청에서)
'•─가장 한국적인.... > 한국의 문화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령 성주사지(聖住寺址) (0) 2008.05.28 여주 고달사지(高達寺址) (0) 2008.05.17 강릉 신복사지(神福寺址) (0) 2008.05.07 홍천 물걸리사지(洪川物傑里寺址) (0) 2008.05.03 쌍사자석등에 마음을 흠뻑 빼앗긴 합천영암사지(靈岩寺址) (0) 2008.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