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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사시사- 보길도를가다•─삶이 머문 여행/전라도(全羅道) 2007. 6. 25. 22:34
보길도를 가다. 고산 윤선도를 찾아서
일부 사진은 무너님의 사진입니다.
아름다운 보길도^^*
고산 윤선도(孤山 尹善道)는
이 보길도에서 어부사시사를 지었으며 85세를 일기로 여기서 눈을 감았다.
보길도에서 윤석도 유적지는 부용동과 세연정, 낙서재, 곳수당, 동천석실등이 있는데
동천석실은 아직도 개발중이었다.
세연정(洗然亭)은 1637년 고산이 보길도에 들어와 부용동을 발견했을때 지은 정자라고 알려져 있으며
조선중기 정원의 걸작으로 손꼽히며 고산의 기발한 착상이 잘 나타나 있다.
개울에 보(판석보, 일명 굴뚝다리)를 막아 논에 물을 대는 원리로 조성한 인공연못이며
이곳에서 어부사시사를 지었다.
세연(洗然)이란
주변경관이 물에 씻은듯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해지는 곳이라는 뜻이다.
고산 윤선도(孤山 尹善道)
조선 중기 문신·시조작가. 자는 약이(約而), 호는 고산(孤山)·해옹(海翁). 본관은 해남(海南)이다.
서울 출생.
남인으로 1612년(광해군 4) 진사초시에 합격하였고, 14세 승보시에서 장원하였다.
28세(인조 6) 별시문과 초시에 장원,
봉림대군(鳳林大君;孝宗)·인평대군(麟坪大君)의 사부(師博)가 되었고,
이듬해 공조좌랑·형조정랑·한성부서윤(漢城府庶尹)등을 지냈다.
33세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예조정랑·사헌부지평 등을 지냈으나,
34세 강석기(姜碩期)의 모함으로
성산현감(星山縣監)으로 좌천된 뒤, 35세 파직되었다.
36세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전라도·경상도의 수군을 거느리고 강화도(江華島)에 이르렀으나
이미 함락된후였으므로 되돌아갔다.
38세 난이 평정된 후 왕에게 문안드리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경상도 영덕(盈德)으로 귀양갔다가
이듬해 풀려나 보길도(甫吉島)의 부용동과 금쇄동에서 은거하였다.
51세(효종 2)에는 보길도를 배경으로《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를 지었다.
저서로 고산유고가 있다.
그는 정철,박인로와 함께 조선시대 삼대가인(三大歌人)으로 불리웠다.
보옥리 공룡알 해수욕장이댜.
공룡알만한 돌들로 덮힌 공룡알해변의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아름다운 보길도....
예송리 해수욕장 활시위처럼 휘어진 약 1km의 해변에 타조알 크기에서부터바둑알 정도 크기의까만 깻돌이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으며해안선을 따라 많은 종류의 난대림 수종이 분포하여 자연 그대로의 공간으로 손색이 없다.이 난대림은 천연기념물 제40호로 수령 약 300년을 자랑하여이 곳을 찾는이들에게 시원하고 편안한 그늘을 되어준다.보길도 가는 배편
화흥포 -> 노화도->소안도->보길도 (약 1시간 20분 소요) ->07:00-17:00 약 1시간 간격으로 여객선 운항
해남 갈두 -> 보길도 (약 1시간 소요)->-> 07:00-17:00 (약1시간 20분 간격)'•─삶이 머문 여행 > 전라도(全羅道)'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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