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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최초의 절집으로 알려진 구미 도리사(桃李寺)•─가장 한국적인..../한국의 절집 2012. 9. 11. 20:30
다시 찾았다.
구미 도리사(桃李寺)
아는 만큼 보인다...이번에는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태조산아래에
고구려의 승려였던 아도화상이 세운 절집이 도리사이다.
불교를 전하기 위하여
서라벌을 다녀오는 겨울길에서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만발한 이 곳을 들러게 된다.
그리하여 이 곳에 절을 짓게 되었다고 전한다.
창건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신라 최초의 절집이라고 한다.
하지만 조선 숙종 3년(1677년) 큰 화재로 대웅전을 비롯한 모든 전각이 사라져 버렸다.예전의 자료소스이다.
http://blog.daum.net/euijj31/11294838
신라에 불교가 처음 전해질 당시 전설에 나오는
아도화상과 관련이 있는 절이다.
아도가 불교를 전파하기 위하여 서라벌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한겨울인데도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만발하여
그곳에 절을 짓고 도리사라 하였다 한다.
정확하게 언제 세워졌는지 알 수 없으나 신라 최초의 절이라고 전한다.
△ 태조선원
△ 도리사극락전(경북문화재자료 제318호)
극락전은 도리사의 부속 암자인 금당암의 법당으로 19세기 초에 세운 것으로 추정한다.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며,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내부에는 나무로 만든 아미타여래좌상을 모시고 있으며벽면에는 벽화를 그려 놓았다.
△ 구미 도리사 석탑(보물 제470호)
이 석탑은 대웅전 앞뜰에 있으며,
전체적으로 5개층을 이루고 있는데, 맨 아래층은 탑을 받치는 역할을 하는 기단으로 여겨진다.
위의 2개 층은 탑의 중심부분인 탑신부이다.
탑신부의 1층과 2층 몸돌은 작은 정사각형의 돌을 2∼3단으로 쌓아 마치 벽돌을 쌓아 올린 것처럼 보인다.
지붕돌 역시 벽돌탑을 모방한 석탑처럼
층단을 이루고 있다.
주목되는 점은 각각 한면에 문틀을 돋을새김한 널돌이 끼워져 있어 문짝모양을 표현한 듯하다.
맨 위의 2개층은 탑의 머리장식받침인 노반이 포개진 것인지
아니면 위층만 노반이고
아래층은 탑신부로 보아야 하는지가 분명하지 않다.
일반적인 탑들과는 다른 특이한 형태로 몸돌과
지붕돌 윗부분의
층단구성이 모전석탑처럼 보인다.
이처럼 희귀한 모습을 한 탑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며, 고려시대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글인용;문화재청)△ 삼성각
△ 아도화상사적비및도리사불량답시주질비(경북유형문화재 제291호)
‘아도화상사적비’는 아도화상의 행적을 기록해 놓은 비로, 자연 암석을 받침 삼아 그 윗면에 홈을 파서 비를 세우고, 머릿돌을 얹었다.
머릿돌은 앞면에 이무기를, 뒷면에 네 마리의 용을 조각하고
그 사이마다 구름·용을 새겨 장식하였다.
비몸 앞면에는 위쪽에 가로로 전서체로 된 비의 이름을 새겨두고, 그 아래에 세로로 비문을 적었다.
뒷면에는 ‘자운비(慈雲碑)’라는 글씨를 새겼으며
그 끝에 건립연대를 밝혀두어 조선 효종 6년(1655)에 세운 것임을 알게 되었다.
‘도리사 불량답시주질비’는 도리사에 논과 밭을 시주한 이의 이름과, 논밭의 규모를 적어놓은 비이다.
자연 암석을 받침 삼아 윗면에
홈을 파서 비를 꽂아두고, 머릿돌을 올려 마무리하였다.
머릿돌은 앞뒷면에 굵은 선으로 연꽃봉오리와 줄기를 조각하였고, 두 옆면에는 2중으로 된 원모양의 띠를 새겨 장식하였다.
꼭대기에는
꽃봉오리모양을 한 머리장식이 우뚝 솟아있다.
앞뒷면에 세로로 새긴 비문은 앞면 첫줄에 비의 이름을 적은 후, 그 아래에 논밭을 시주한 자와 그 규모를 밝혀두었다.
비문 끝에 남긴 기록을 통하여 숙종 38년(1712)에 비를 세웠음을 알게 되었다.
17세기 중엽∼18세기 초에 세운 작품들로,비문이 갖는 역사적 의미나 조각의 솜씨 등은 충분히 활용할 만한 가치를 지닌다.
△ 좌선대
△ 아도화상존상
아도화상은 중국 위나라 아굴마의 아들로 일명 묵호자라고도 부른다.
신라 19대 눌지왕 때 19세의 나이로 신라에 불교를 전하기위해 몰래 들어와 묵호자란 이름으로
지금의 선산군 도개면 도개동의 모례장자의집에 숨어서
낮에는우곡에서 소와 양을 기르는 목동이되고
밤에는 많은 사람을 모아 불법의 자비로운 진리를 강론하기를 3년이나 계속하였으며 도리사를 창건하였다
△ 적멸보궁(寂滅寶宮)
1977년 세존 사리탑에서 발견된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사리탑을 새우고
적멸보궁(寂滅寶宮)을 1982년에 주지 法燈和尙 (법등화상)에 의하여 건립되었다
적멸보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다.
예전에는 들어가질 못했다.
이번에는
문이 열려있어 다행히 자세히 살필수가 있었다.
△ 석가세존사리탑(釋迦世尊舍利塔)
적멸보궁 뒤편에 있는 석가세존사리탑은 1977년 세존사리탑에서 발견된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1987년에 법등화상이 조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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