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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대군묘의 전형이자 파격인 월산대군묘(墓)및 신도비•─삶이 머문 여행/서울,경기(京畿) 2011. 9. 6. 21:43
월산대군묘및 신도비
소재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신월동 산 16-35번지
공양왕릉에서 낙타재를 넘어가면 오른쪽 야산에 월산대군묘가 있다. 신월동 능골마을야산이다.
덕종(추존)의 장남이자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
이 정(1454~1489)의 묘에서 시 한편을 떠올려본다.
추강(秋江)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낚시 드리우니 고기 아니 무노매라.
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배 돌아오노매라.
아름다운 달밤에 욕심없고
한가로운 마음을 노래한 이 시는 월산대군에 지은 시이다.
△ 월산대군 신도비
신도비의 비신과 이수가 한 돌로 이루어져 있다. 비신의 높이는 218cm, 폭 74cm, 두께 32cm이다.
△ 글씨가 독특하다.
전사체..두전과 비문을 짓고 쓴 임사홍은
한 생의 허탈함을 풍류속에 풀어내다 간 월산대군의 인품을 엿보이고 싶었을까?
월산(月山)이란 글자를 달 과 산이란 상형문자로 표현해두었다.
또한
大자를 두개 겹쳐 쓴 점도 특이하다.
월산 대군 (1454년 -1488년)은 조선의 이름은 정, 자는 자미이고 호는 풍월정이다.
덕종의 맏아들로 성종의 친형이다
어릴 때에는 할아버지인 세조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으며 문장에도 뛰어나 중국에까지 그의 시가 알려졌다.그는 자신의 고향인 북촌에다 별장을 지어놓고
그 곳에서 시를 짓고 책을 읽으며 자연 속에 묻혀 일생을 보냈다
(글인용; 답사여행의 길잡이,조선왕조실록)사후 그의 묘는 수난을 당하였다.
연산군은 그의 부인 박씨와 함께 자다가 꿈에 그를 보고는 밉게 여겨
내관으로 하여금 긴 쇠기둥을 만들어
그의 묘 광중에 꽃게 하였는데 우레와 같은 소리가 들렸다고 실록에 기록되어있다.
△ 월산대군묘앞 장명등
▲ 망주석과 문인석
월산대군 묘에서는 이상한 것이 발견된다.
부인 박씨와 쌍릉인데 전후배치가 특이하다. 또한 보통은 앞쪽에 부인이 오는데
여긴 앞쪽에 월산대군이 뒷쪽에 부인 박씨를 모신 점이라 할 수 있다.
박씨 부인의 허물을 감취 주려는 의도(?)는 아닐까?
월산대군의 부인 박씨는 연산군에 의해 강제추행을 당하자
그 욕을 씻고자
이 곳 월산대군 묘에 와서 자진하였다고 전해진다.
그 후 중종반정때 박씨의 동생 박원종은 연산군을 쫒아내는 주동인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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