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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리 마애여래좌상•─가장 한국적인..../한국의 문화재 2011. 3. 23. 08:00
티끌 하나 없는 하늘이 빚어내는 노을은 순례자의 헛헛한 가슴을 적시기에 충분할 만큼 찬란했다.
그러나 전각이 허물어진 절터의 우뚝한 탑에 기대서서
넋을 놓아버린 까닭은
가슴시리도록 아름다운 색으로 물든 하늘 때문은 아니었다.
하늘이 점점 짙은 남색으로 바뀌어 갈 무렵 초롱초롱한 푸른 눈매로 나를 바라보던 그믐달의 자태 때문이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한기가
절터를 에워쌌지만
찬 기운이 더해질수록 달은 더욱 빛났으니 차마 곁을 떠나지 못한 것이다.
언제 긴 밤이 지났는지 멀리 새벽놀이 벌겋게 물드는 창가에 서서 어제 밤, 만복사터에서 바라보던 달을 추억하다가 길을 나섰다.그러나 여원치로 향하는 동안
놀은 어디로 흩어져버렸는지 어느새 흰 구름이 하늘을 뒤덮어 버렸다.
냉큼 오른 고갯마루에 자동차를 세우고
산길을 걸어 내려가는데
어디선가 들리는 묘한 소리에 발길을 붙들리고 말았다.
남원에서 운봉이나 함양으로 가는 길목인 여원치에 있는 마애불이다.
마을 사람들은 ‘할미’라고 부른다.
이 불상은 북쪽50m지점
"부처모퉁이"로 불리던 곳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겼다.
불상은 본래 동쪽을 향한 3m 내외 높이의 바위면에 돋을 새김하고
그 주변 바위면을
파내어 감실에 모셔진 것처럼 보인다.
불상의 상호가 많이 훼손되었으나 머리는 소발이고
육계가 표현되어있다.
귀는 길게 어깨부분에 이르고 법의는 우견편단이며 옷자락이 자연스럽게 내려왔다.
오른손은 아래로 내려 촉지인을 결하고 왼손은 가슴앞에서 펼쳐 손바닥에 물건을 받친것처럼 보인다.
결가부좌한 무릎은 넓어
안정감이 있고
왼손의 형태로 미루어 약사여래로 보이나 분명하지는 않다.
상대.중대.하대석을 갖춘 대좌에는 돋을 새김으로 연화문이 표현되었고
대좌를 제외한 불상의 높이는 120cm이다.
몸에 비하여 머리와 손발이 크고
표현이 자연스러우나 어깨가 상대적으로 좁고
대좌의 표현이 균제되지 않아 고려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글인용; 안내판,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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