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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용가(處容歌)가 전해지고 있는 울산의 망해사(望海寺)•─가장 한국적인..../한국의 절집 2009. 4. 17. 21:41
망해사(望海寺)소재지; 울산광역시 울주군 청량면 율리 222번지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제 49대 왕인 헌강왕(875~886년)때 동해의 용왕을 위해 창건하였다고 한다.
사실인지는 알 수없으나 그 때의 영화는 폐허가 되고
자그마한 절집으로 변해버린 망해사를 찾았다.
창건시에는
신방사(新房寺)라고도 불렀다.
처용의 설화가 전해지는 망해사가 보고 싶다.
아니 좀 더 솔직이 이야기하면 망해사부도탑이 보고 싶었다.
절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일주문은 없으나 소나무가 사방을 호위해 주고 있었다.
큰 절집의 우람한 일주문은 없어도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봄이 가지런하게 밭을 갈아두었다. 참으로 봄은 부지런한 녀석이다.
▲ 영암당대종사비와 부도탑
▲ 영취산 망해사
▲ 망해사 대웅전은 1988년에 새로이 지었다.
東京明期月良 夜入伊遊行如可 入良沙寢矣見昆 脚烏伊四是良羅
二兮隱吾下於叱古 二兮隱誰支下焉古
本矣吾下是如馬於隱 奪叱良乙何如爲理古(처용가處容歌)
서라벌 밝은 달밤에 밤 늦도록 놀고 지내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로구나.
둘은 내 것이지만 둘은 누구의 것인고?
본디 내 것(아내)이다만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
▲ 망해사 삼성각
▲ 망해사 범종각
종이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매달려있다.
보물 173호로 지정되어 있는 망해사 동,서 부도이다.
눈은 벌써 부도의 기단을 살핀다.
좀 더 열심히 살펴봐야겠다.
망해사 창건설화는 덤^^*
신라 제 49대 헌강대왕 때는 서울(경주)로부터 지방에 이르기까지 집과 담이 연이어져 있었고
초가는 하나도 없었으며
풍악과 노래소리는 길거리에 가득하였고 바람과 비는 철마다 순조로와 나라는 퍽 태평하였다.
때에 대왕은 오늘날의 울산 세죽으로 나들이를 나왔다가 낮에 물가에서 쉬는데
문득 구름과 안개가 자욱해져 지척을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이는 동해용왕의 소행이라 하는 일관의 조언에 따라,
왕은 그의 측근들에게 명령하여 용을 위해 근처에 절을 세우게 하니 그 명령과 함께 구름과 안개가 걷히어 졌으므로,
이 땅의 이름을 개운포라 하였다.
왕은 서울에 돌아오자 이 영축산 경승지를 선정하여 용을 위해 절을 세우고
그 이름을 망해사라고 하였다 한다.
그런데 그 때에 절을 세우라는 왕명이 있자 그것을 기뻐한 동해 용왕은 그의 일곱 아들을 거느리고
왕앞에 나타나 왕의 성덕을 찬양하여 춤을 추며 음악을 연주했고,
그 중 한 아들은 왕을 따라 서울에 들어와서 정사를 도왔는데 그 이름을 처용이라 하여,
처용이 나온 바위를 처용암이라 하였다.
지금도 개운포 해중에는 이 바위가 남아있다. [삼국유사 처용랑 망해사조(處容郞望海寺條)]
찾아가는길 경부고속도로-울산,언양간고속도로->언양IC->무거로타리->부산방면(7번국도)->울산구치소->망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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