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루귀사랑 2007. 8. 22. 18:15

 

행주산성

사적 제56호(1963년 지정)

성의 넓이 0.16km2. 정확한 축성연대와 목적은 알 수 없으며,

 임진왜란 때 장군 권율()이 대첩을 이룬 싸움터이다. 1592년(선조 25) 7월 8일 이치()에서

왜적을 격멸한 권율은, 12월 수원 독산성(禿)에서 다시 적을 물리친 뒤 서울 수복작전을 개시,

조방장() 조경()과 승장 처영() 등 정병 2,300명을 거느리고 한강을 건너

행주 덕양산()에 진을 치고 서울 수복을 노렸다. 이때 왜군 총수 우키타 히데이에[]는

고니시 유키나가[西], 이시다 미쓰나리[], 구로다 나가마사[] 등의 부하 장성을

   거느리고 3만여 병력으로 공격해왔다. 권율은 이들을 처절한 접전 끝에 크게 무찔렀다.  

 

 

 

 지금 산허리에 목책() 자리가 남아 있고, 삼국시대의 토기 조각이 출토되는 것을 보면 임진왜란

이전에도 중요한 군사기지였음을 알 수 있다. 1603년(선조 36)에 세운 행주대첩비와 1963년에 다시 세운 대첩비가 있으며, 1970년 권율의 사당인 충장사()를 다시 짓고 정자와 문을 세웠다. 네이버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