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루귀사랑 2007. 6. 24. 14:45

 

 칠백의총(사적 제105호)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조국강토를 지키기 위해 15,000명의 왜군과 3차례의 전투를 벌이다

전원 순국하신 중봉 조헌선생과 승장 영규대사가 이끄는 칠백의사를 모신 성지이다.

인조 25년(1647년)에는 사당을 건립하여

칠백의사의 위폐를 모셨으며,

현종 4년(1663년)에 종용사라는사액과 제토를 하사하여 대대로 제사를 모시게 하였다.

 

 

중봉조헌선생일군순의비

선조26년(1603년) 해평부원군인 윤근수가 글을 짓고 김현성의 명필로 칠백의총옆에 건립한것인데

1940년 일제에의해 금산 경찰서장에 의해 폭파당했다.

일제 강점기인 1940년에는 일제가 진화사(進化祠)를 만들고,사우와 의총을 허물고 일군순의 비를 폭파한 다음

제토를 강제로 빼앗아 팔아 버렸다.

광복후1952년에 금산군민이 성금을 모아 의총과 종용사를 재건하였다.

1970년 국가에서는 경역을 2만 2,800평으로 확장하고 종용사, 기념관, 순의탑 등을 새로 지어 사적으로 지정하였다.

 

 

 

▲ 취의문

 

 

 종용사칠백의사와 중봉조헌선생과 승장 영규대사가 금산 눈벌싸움에서 순절한 고경명선생

그 막료및 사졸등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일제가 우리 민족혼 말살정책으로 경역을 황폐하게 만든것을 1952년부터 1976년까지

정화작업을 하여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단장되었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05호 지정되었다.

 

 

 

 

 의총임진년 8월18일 왜병장 고바야가와가 이끄는 1만 5천여 명의 왜적과 맞서 싸우다

돌아가신 칠백의사를 모시고 있다.

싸움이 끝난 4일후 

조헌선생의 제자 박정량과 전승업등이 칠백의사의 유체를 모아 한 무덤을 만들고

칠백의사총이라 이름 하였다. 

 

 

 

 의총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