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머문 여행/대구광역시

한국최초의 피아노 유입지였던 사문진나루터

노루귀사랑 2013. 10. 12. 23:30

 

 

 

 

사문진나루터

대구 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성산리

혹 아시나요?
우리나라 최초로 피아노가 들어온 곳은요.....정답은 대구 달성군의 사문진나루터입니다.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 성산리(화원유원지)

사문진 나루터로 한국 최초의 피아노가 운반되어 들어왔다고 한다.

1900년 3월 26일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인 사이드보텀(한국명 사보담) 부부가 대구에서 선교 활동을 하면서

피아노를 처음 들여 오게 되었다고 한다.

이 사실은 한국음악문헌학회 손태룡 대표의 논문에서 밝혀졌다.

2014년 달성군 개청 100년을 맞는

달성군의 발빠른 행보는 피아노 최초의 유입이라는 논문과 함께 벌써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관광자원화 하고 있다.

오랫만에 찾은 사문진나루터는 대구시민에게는 화원유원지로 잘 알려진 곳이다.

대구시민이라면 한 번 쯤은 다녀갔을 것 같다.

찾아가는 길은

네비에다 '사문진교' 나 '화원유원지'로 검색하면 된다.

 

 

그리 오래 되지도 않았다.

내가 어릴때만 해도.....여기서 배를 타고 저쪽으로 건너야 했다.

세월이 얼마나 빠른지.....ㅋ

사문진나루터에서는 이곳 달성군 화원읍과 고령군 다산면을 이어주는 뱃길이 있었다.

그 뱃길이 1993년 개통된 사문진교로 인해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세월이 지난 오늘의 사문진 나루터...

이제는 새로운 관광명소로 서서히 부각이 되고 있다.

 

 

 

 

사문진 나루터는

부산에서 낙동강을 거슬러 대구로 오는 뱃길이었다.

낙동강에서 가장 많은 물자거래로 인해 번창했다고 전해지는

사문진(沙門津) 즉, 화원(花園)이다.

수많은 보부상과 상인들이 짐을 내리고 잠시 쉬어가거나 숙박을 하던 사문진 나루터에는 새로운 관광자원이 생기고 있었다.

예천에 있는 삼강주막처럼

주막도 만들고 피아노 이야기도 꾸미고 있었다.

대구의 또 다른 명소로 재탄생한다.

 

 

주막촌 복원공사장 옆에 있는 팽나무의 기품이 돋보인다.

참 수많은 사연을 안고 있을 듯 하다.

앞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들어주고 기억하며 다른 세대에게 전해주겠지.....갑자기 탁주 한 잔이 그리워진다.

술도 못하지만

그 분위기에 취하고 싶다.

벌겋게 물들어 가는 놀빛이나 낯빛이나......

구분이 되지 않아 흠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사문진 나루터다.

 

 

 

1900년 3월 피아노 1대가

어설프게 포장되어 사문진 나루터로 들어왔다.

인부 30여 명에 의하여 소달구지에 옮겨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나무토막 안에 죽은 귀신이 들어 있어 괴상한 소리를 낸다며 신기해 하였다.

사문진 나루터를 통해 대구로 운반된 피아노의 주인은 미국인 선교사 사이드보텀(한국명 사보담) 부부였다.

대구 종로(지금의 약전골목)에 있던 자신의 숙소로 운반하였다.

 그로부터 1년 후 파커 선교사가 들여와 대구 신명학교에 기증을 했다고 한다.

 

 

 

사문진나루터는 일몰도 아름답다.

서쪽 산너머로

해가 지는 모습.....조금 늦은 완벽하게 담을 순 없었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앞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것 같다.

아름다운 석양과 사문진 나루터에서 막걸리 한 잔으로 삶의 위로를 받던 보부상들의 정겨운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으니 말이다.

앞으로 기대가 되는 사문진 나루터다.

 

 

 

 

사문진나루터는 조선 전기

낙동강과 금호강을 연결하는

하천 교통의 요지이자 대구로 통하는 관문 역할을 수행하는 나루였다.

낙동강은 일본 무역상들은 물론 강원도, 충청도, 경상도 상인들의 대표적 물품 수송로이기도 하였는데,

낙동강과 금호강이 합류하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성산1리와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호촌2리를 잇는

사문진나루터가 가장 번창해

 1486년(성종 17)까지 대일 무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사문진나루터는 낙동강 상류와 하류를 연결하는

하천 교통의 요지였기 때문에

왜에서 이입된 물품을 보관하는 화원창(花園倉), 왜물고(倭物庫)를 설치하기도 하였는데,

사무역의 발달로 15세기 후반에 폐쇄되었다.

하지만 사문진나루터는 해방 이후까지 부산의 구포와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오르내리는 낙동강 뱃길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해 왔다.

조선시대 대소비지 대구를 대상으로 하는 남해안의 돛단배나 범선의 입출항이 잦았는데,

주요 운송 해산물로는 소금, 미역, 김, 어물 등이 주를 이루었다.

(관련글 인용; 디지털 고령문화대전,http://goryeong.grandculture.net)

 

 

 

 

 

 

 

 

 

 

 

 

 

 

2014년 3월

달성군청 개청

100주년을 맞이하여 사문진 나루터는 새롭게 변모한다.

낙동강 상류와 하류를 연결하는 하천 교통의 요지로서의 옛명성을 다시 찾을 수 있을 듯 하다.

예천의 삼강주막처럼 사문진 주막도 많은 사람들로 사랑을 받을 것이다.

나룻배 기념관도 기대가 되고 있다.

대구광역시와 달성군에서는

명품 휴식명소가 될 수 있도록 철저한 준비와 관리를 필요로 한다.

과연 옛 화원유원지의 명성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돌아서는 걸음이 떨어질 때마다 은근한 기대가 따라 붙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