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머문 여행

수도권나들이....남양주 실학박물관

노루귀사랑 2013. 10. 17. 08:00

 

       남양주 실학박물관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27-1번지

남양주 실학박물관의 관람시간은 상시(월~일) 10:00 ~ 18;00  3월에서 10월까지 토요일은 19시까지 연장개관 한다.

휴무일은 격주 월요일, 두번째, 네번째 월요일이다.
입장료는 2.000원이다. 
다산유적지를 나와 실학박물관으로 향한다.

실학박물관이라.......

실학박문관은 2009년 다산 정약용 선생의 유적지가 있는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대지 4075㎡ 연면적 2038㎡ 규모의 2층 건물로 개관하여 우리나라 전통문화유산인

실학문화를 연구하고 확산시키는 데 기여해왔다고 한다.

 

 

 

 

 

 

 

 

 

 

 

 

 

 

실학은 조선후기

경기도와 서울을 중심으로 등장한 우리나라 유학의 새로운 학풍이다.

조선후기에는, 서세동점(西勢東漸)1이라는

세계사의 전환과정에서 임진왜란(1592∼1598)과 병자호란(1636)으로 국가기능이 마비되고 국토가 황폐화되었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 조선사회에서는

여러 가지의 개혁을 진행하여 농업생산력이 회복하는 한편, 새로운 상업이 발달하였다.

 

 

 

하지만 급박하게

전개되는 시대 상황에도 불구하고,

학문은 여전히 농민들의 현실생활과는 동떨어진 사장학(詞章學)이 아니면 주자학적인 성리학(性理學)이나

형식적인 예학(禮學)속에서 잠자고 있었다.

이러한 학풍을 반성하고 국가의 총체적 개혁과 대외개방을 지향하려는

새로운 학풍이 일어났는데, 이것이 곧 실학(實學)이다.

 

 

 

실학은 ‘궁경치용窮經致用’

즉 “고대의 유교 경전을 궁구해서 국가의 총체적 개혁에 이바지하는 것”을 학문의 목표로 삼았다.

물론 실용을 중시하는 이러한 학풍은 조선후기의 실학에만 고유한 것이 아니고

자기시대의 요청에

올바로 부응하려는 학문이라면

어느 시대에나 나타날 수 있는 것이었다.

 

 

 

 

육의 '송하한유도'

 

 

 

△ 이수광의 백과사전인 지붕유설

조선시대에도 지금의 백과사전과는 조금은 다르지만, 백과사전 같은 책이 있었다.

여기에서는 세계 50여개국의 지리와 풍속, 역사 등을 소개하고 있는데, 특히 유럽의 지도를 ‘구라파국여지도’라는 이름으로 소개하여

실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세계에 대한 지식이 조선사회에 들어오고 있던 상황을 알려주고 있다.

이 책이 바로

이수광(李睟光,1563~1628)이 지은 지봉류설이다.

지봉류설의 내용과 체제는 이후 실학자인

성호 이익의 성호사설,

이덕무의 청장관전서,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 등에 영향을 주었다.

 

 서양 문물을 조선에 소개한 책,천주실의

 천리까지 본다는 천리경千里鏡

 

 

 

 

 

 

△ 베트남(안남)사진들의 모습-직공도

청나라에 온 각국의 사신을 그린 그림에 등장하는 베트남사신의 무습이다.

문신은 부채를 들었고, 무신을 홀을 들었다.

이수광은 베트남사신들과 깊은 교류를 하였고, 그의 시는 베트남과 오키타와(유구)등 해외에 널리 알려졌다.

 

 

 

 

△ 반계수록

실학의 시조인 반계 유형원이 조선사회의 개혁 방안을 제시한 책이란

평가를 받는 반계수록은

 유형원이 살아있을 때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으나 훗날 양득중이라는 유생의 천거로

이 책을 열람한

영조로부터 극찬을 받은 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특별전시관에는 2013년 '성호 이익 서세 250년 기념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조선후기 주체적 입장에서 서양문화를

이해 수용한

성호 이익의 실용과 개척 정신을 전시로 연출하고 우주와 땅을 상징하는 천문도와 세계지도 등 50여종의 유물 전시하였다.

9월 22일까지 전시한다고 했는데 방문일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통도사 금동천문도

1625년(인조 3년) 금동으로 만든 천문도로

모두 491개의 별리 표시되어 있다.

"1652년 9월에 삼각산 문수암의 비구니 선화자달성"했다는 기록이 있다. 복제품이다.

 

 

 

 

 

 

 

 

성호 이익(1681∼1763)은 실학의 종장으로 불리는 학자이다.

그는 부친이 당쟁으로 희생된데다 둘째형마저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죽음을 당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벼슬에 나가지 않고

오직 학문에 전념하여 실로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그의 저술은 평생에 걸쳐 유교 경전에 대한 연구 성과를 정리한 맹자질서(孟子疾書) 등 경전에 대한 연구들,

민생의 대책과 제도개혁 방안을 체계화한 (곽우록藿憂錄),

40세부터 83세까지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그때 그때 기록한 학문노트인 (성호사설星湖僿說)이 대표적이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이미 마젤란 등의 세계일주에 의해 증명되었다고 하였다.

그 경험을 반영한 서양 세계지도에 대한 지식은 이익의 믿음을 확고히 하였다.

지구의 중심으로 쏠려

들어오는 힘[地心]은

지구원형설을 뒷받침해 주는 논거였다.

나아가 이익은 동서양 문명의 특성을 지구 원형설에 근거하여 설명하였다.


 

 

중국은 지구 위쪽의 정중앙에 위치한 지역[양]으로

‘인물이 처음 생겨난 땅이요. 성현이 먼저 태어난 곳’이었다. 그 아래쪽 정중앙[음]은 구라파로 물질문명이 발전한 나라였다.

이익은 서양문화의 우수함을 인정하되 음양陰陽의 형이상학적 위계에 근거하여

동양보다는 한 수 아래라는 점을 동시에 설명했던 것이다.

(관련글,일부사진자료 인용; http://www.silhakmuseum.or.kr)

 

 

 

 

 

 

 

 

 

 

 

 

 

  1. 서양(西洋) 세력(勢力)을 차차 동쪽으로 옮김 서쪽의 세력이 동쪽으로 점점 밀려온다 (즉 밀려드는 외세와 열강)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