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머문 여행

청권사 그리고 효령대군

노루귀사랑 2013. 1. 28. 17:45

 

청권사(淸權祠)

청권사(淸權祠)에 들렀다.

근데 문이 굳게 닫혀있다. 주말인데 문이 닫겨있다니.....이게 말이 돼?

그것도 대구에서 올라갔는데

그리고 효령대군 16대손인 내가 찾아왔는데...ㅠ

서원을 찾던 솜씨(?)로 협문을 찾았다.

주차장 옆에 관리인이 거주하는 대문이 하나 있었는데 주차관리를 하시는 할머니께 부탁을 드렸더니 흔쾌히 문을 열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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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권사(淸權祠)는

효령대군(孝寧大君)을 모시는 사당의 이름이다.

50만 후손들의 종친회명칭이며

또한, 효령대군의 위덕과 사상을 계승,선양함으로써 사회에 기여하려는 사단법인의 명칭이다.

관람시간

오전9시 ~오후5시 (토요일은 오후1시)공휴일 .일요일은 휴관한다.

 

 

청권(淸權)이란 뜻은  

옛날 중국 주(周)나라의 우중(虞仲)왕자가 아버지 태왕(太王)의 뜻을 헤아려

아우에게 왕위를 양보한 미덕을 칭찬하면서 공자(孔子)가 청권이라고 하였는데, 효령대군께서 아버지이신 태종(太宗)대왕의 의중을 헤아려

아우인 충녕대군(세종대왕)에게

왕위를 양보한 미덕을 세종대왕께서는 나의 형이 곧 청권이라고 칭송하셨고
정조대왕께서 효령대군의 사당을 청권사로 사액(賜額)하신데서 연유한다.

효령대군의 사당과 묘소는 서울 서초구 방배동 효령로에 있으며,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되어 있다.

 

 

 

 

 

 

 

△ 모연재

 

 

 

△ 효령대군 신도비와 해설비

 

 

조상을 높이 받들고 삼가 근신하여 종을 이루라는 말씀같다.

 

 

 

묘역에 올라가기전에 비각 두 기를 만난다.

효령대군과 부인 정씨의 비이다.

 

 

 

 

△ 효령대군이보묘역 (孝寧大君 李補 墓域)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2호

조선 태종의 둘째 아들이며 세종의 형인 효령대군(1396∼1486)의 사당과 묘소이다.
효령대군의 이름은 보(補), 자는 선숙(善叔), 시호는 정효(靖孝)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글읽기와 활쏘기를 좋아했고,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다.

세조 10년(1464)에 원각사 창건을 감독하였고, 불교에 독실하여 승려들을 모아 불경을 강론하기도 했다.
사당에는 효령대군의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영조·정조 때에 중건과 보수를 거쳤다.

(글인용;문화재청,청권사홈페이지,다음백과사전)

 

 

효령대군묘(좌측)와 예성부부인 해주정씨(우측)의 묘이다.

중앙에 석등이 있고

좌,우로 문인석 2구가 서 있다.

 

 

효령대군(孝寧大君, 1396년~1486년)은 조선의 제3대 국왕 태종의 둘째 아들이며, 원경왕후 민씨의 소생이다.

세종의 둘째 형으로 성은 이(李),

이름은 보(補)이다. 선숙(善叔), 호는 연강(蓮江), 시호는 정효(靖孝)이다. 

세종대왕의 형이자 세조의 숙부로 왕실의 원로였으며, 조선의 숭유 억불 정책으로부터 불교를 옹호,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세종대왕 즉위 후에도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 등 6대에 걸쳐서 91세 장수를 누렸다.

 

 

12세에 해주정씨를 부인으로 맞이하였고 17세에 효령대군으로 봉해졌다.

어릴 적부터 글 읽기를 좋아하여

30세 전에 이미 학문과 덕성을 이룩하였고 붓글씨에도 능해 명필이었다고 전해진다.

활쏘기에 능숙하였고

효성이 지극하여 부왕으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그는 일찍부터 좌찬성 정역(鄭易)의 딸과 혼인하여 6남 2녀를 낳았으며,

서자녀로 1남 1녀를 두었다.

불교를 좋아하여 승도를 모아 불경을 강의하였다. 원각사 창건 때에는 조성도감 도제조를 맡았다.

이 때 주조되어 1985년까지 보신각에 달려 있던 큰종과 탑골공원의 10층 석탑은 그 제조기법이나 예술성이 뛰어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10층 석탑은 국보 제2호로, 원각사지 대종은 보물 제2호로 각각 지정되어 있다.

법화경, 금강경, 원각경, 반야심경, 능엄경, 선종영가집 등 불경의 번역과 교정에도 힘썼고,

많은 사찰을 순회하면서 신도들을 온후하게 계도하였다.

그리고 향촌의 자치규약인 향헌 56조를 지어 백성들의 윤리 도덕심을 함양하였으며 유불심법동일원의 이념을 추구하였다.

 

 

91세의 천수를 다하고 현재의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동에 예장되었다.

묘소는 1972년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되었다.

현 사당은 1736년(영조 12)에 왕명으로 효령대군 묘 앞에 처음 세우면서 '청권사'라고 하였다.

생전에 손자 33인, 증손자 109인으로 후손이 번성하였다.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파종회중에 자손이 가장 번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특별시는 1984년 11월 7일 청권사 앞길을 `효령로'로 명명하였다. 

 

 

 

그리스에서는 신혼부부에게 행운과 부를 가져준다고 하여

결혼식에서 하객들이 산사나무 잎과 열매를 지니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로마에서는 신부의 방을

산사나무로 만든 횃불로 불을 밝힌다. 
 

 

산사나무의 열매가 붉게 익어가면

가을을 넘어 겨울이 다가오는 시간임을 알려준다는데 이미 계절은 겨울의 한가운데이다.

 

 

 

들어갈 수가 없다.

굳게 잠겨있었지만 만족한다.

할아버지를 뵙고 돌아오는 걸음이 많이나 가벼웠다. 다음에 5월에나 다시 와야겠다.

마음의 한 짐을 내려놓은 것 같은 어느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