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채미정(龜尾 採薇亭)
놀라운 사실!
문화재를 찾아 전국을 쫒아다니길 7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대구와 가까운 구미...금오산을 자주 올랐건만 채미정은 한 번도 들린 적이 없다.
어쩌면 들렀다해도 기억에서 존재하지 않을 뿐인가?
여하튼 오늘은
금오산올레길을 걷고 난 뒤에
야은 길재선생과 연관이 있는 채미정에 들린다.
구미 채미정(龜尾 採薇亭)
명승 제52호
채미정은
고려에서 조선의 왕조 교체기에 두 왕조를 섬기지 않고
금오산 아래 은거한 야은 길재(1353~1419)의 충절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해 영조 44년(1768년)에 금오산 아래 건립한 정자이다.
채미정은 멀리 바라보이는 금오산과 채미정 전면의 맑은 계류와 수목들이 채미정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경관미가 뛰어난 명승지이다.
야은 길재(1353~1419)선생의 회고가이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정자 이름은 야은 선생이 고려가 망한 후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벼슬에 나가지 않고 고향에서 은거 생활을 한 것을 중국의 백이숙제가 고사리를 캐던 고사에 비유하여 이름을 지은 것이다.
돌다리를 건너면 채미전의 외삼문에 해당하는
흥기문을 만난다.
채미정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기와집이다.
평면은 중앙 한 칸만
온돌방으로 꾸미고 방에는 우물마루를 깔았다.
또한 온돌방에 들어열개문을 설치하여 문만 열어 올리면 전체가 마루가 되도록 장치하였다.
건물 골격은 5량가에 겹처마집이다.
(자료인용;문화재청,구미시청)
△ 구인재
△ 유허비각
고려문하주서 야은길선생유허비
숙종 30년(1694)에 선산도호부사 김만중이 세웠다.
숙종의 어필 오언절구(五言絶句)가 보존되어 있는 경모각이다.
左司諫 吉再(좌사간 길재)
歸臥烏山下(귀와오산하) 淸風比子陵(청풍비자릉) 聖主成其義(성주성기의) 勸人卽義興(권인즉의흥)
돌아와 금오산 아래 누었으니 청렴한 기품은 엄자릉에 비하리라 성주께서 그 미덕을 찬양하심을 후인들에 절의를 칭찬함이다.
하얀 눈사이로 드문드문 남아있는 가을의 단풍잎은 야은 길재선생의 충절을 닮아있는 것 같았다.
붉은 핏빛으로 고려에 대한 충정을
지키려 했던
야은 선생의 올곧은 마음은 후세에도 전해진다.
성리학이란 이름으로...
이색, 정몽주와 함께 고려삼은(三隱) 중의 한 사람으로 기억된 야은 길재선생은
김숙자-김종직-정여창, 김굉필-조광조-퇴계선생으로 그 학풍이 이어져 성리학의 꽃을 피우게 되었다.
동방오현은
김굉필,정여창,조광조,이언적,이황선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