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 왕자와 단종 태실의 수호사찰인 성주 선석사(禪石寺)
세종대왕 왕자와 단종 태실의 수호사찰인 선석사를 찾았다.
예전에는
세종대왕 왕자태실만 찾았는데...
이번에는 선석산과 선석사를 찾기고 했다. 어느 겨울날이었지만 풀린 날씨 덕분에 느릿한 걸음을 할 수 있었다.
선석사는 통일신라 효소왕 1년(692) 의상대사가 지금의 자리보다 서쪽에 신광사라 이름지어 세웠다.
그 뒤 고려 공민왕 10년(1361) 나옹대사가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겼다.
당시에 새로운 절터에서 큰 바위가 나왔다 하여 터닦는 다는 뜻을 가진 ‘선(禪)’자를 넣어 선석사라 했다.
영조 1년(1725) 서쪽 옛 터로 옮겼다가
순조 4년(1804) 지금 있는 자리로 다시 옮겨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성주 선석사(禪石寺)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217번지
마른 겨울하늘 사이로 노거수들이 땅위의 흐트진 여백을 가득 채우고 있다.
빼곡하지 않은 허전함이 여유로움으로 묻어나는 선석사..그 공간에서 머무는 시간들이 곱다.
△ 선석사 대웅전(경북문화재자료 제113호)
대웅전은 앞면 3칸
옆면 3칸의 규모로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관련글,일부사진;문화재청)
△ 성주 선석사 영산회 괘불탱
(보물 제1608호)
1702년(숙종 28) 탁휘·법해·설잠·성징등이 제작된 괘불탱이다.
화면 중앙에 크게 묘사된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서있고,
화면의 상단에는 아난과 가섭,
2명의 제자가 합장한 모습으로 상반신만 표현되었다.
좌우협시는 본존불보다 한 발짝 앞서 겹쳐 표현하여 공간감과 입체감을 드러내고 있다.
본존 석가여래의 수인은 통상의 항마촉지인이나 설법인이 아닌 오른손을 어깨로 들어 연꽃가지를 들고 있다.
그림의 화기(畵記)에 “영산회도일부봉안(靈山會圖一部奉安)”이라고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이 도상은 선종의 염화시중과 조선시대에 성행한 선교합일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된다.
특히 이 작품은 현재까지 알려진 불화 중에서
염화시중(拈華示衆)의 내용을 표현한 불화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이다.
△ 성주 선석사 범종각
△ 성주 선석사 정법료
영조의 친필이 보관되어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실제 있는지는 확인불가!
종무소, 지대방등의 복합 용도로 사용되는 ㄷ자형의 건물이며 마루에는 1730년대에 만들어진 범종이 있다.
△ 성주 선석사 명부전
△ 성주 선석사 칠성각
△ 성주 선석사 산신각
비탈진 언덕위에 서 있는 소나무들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 것일까?
앞쪽의 세종대왕 왕자들의
태실에게 경배를 하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불러오는 바람에 솔향을 천천히 날려주는 소나무의 충복스러운 충성심이 느껴진다면 조금은 과장일까..ㅎ
여하튼 그런 모습으로 다가온다.
△ 선석사 태실법당
2009년 국내 최초로 세워진 법당으로, 보존처리한 태아의 태실을 봉안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