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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중유물들이 한 곳에 전시되어 있는 목포 국립해양유물전시관

노루귀사랑 2011. 5. 10. 09:48

 

목포갓바위를 둘러보고

근처에 있는 국립 해양유물전시관을 찾기로 했다. 해양유물전시관...수중의 유물을 전시한 곳일까..여하튼 들어가기로 했다.

해양유물전시관은 목포시 용해동 갓바위 공원 근처에 자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하나밖에 없는 해양박물관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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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신안선의 복원은 경이로웠다.

1323년 여름 중국을 떠나 일본 교토의 동복사로 가던 신안선은 우리나라 서남해안에서 침몰한다.

그로부터 700년이

지난 그 신비한 비밀이 밝혀지고 있었다.

 목포 국립해양유물전시관

 

 

전시관 야외바닷가는 우리나라 전통 배(한선) 전시공간이다.
주로 어촌 현지 목수들이 직접 지은 배들로서 제주도 떼배, 가거도배, 통구민배, 멍텅구리배, 전통 닻 등이 있다.

그리고, 갯벌에는

 다양한 전통 고기잡이 그물이 설치되어 있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일이며, 전시실 입장은 관람시간 1시간 전까지 가능합니다.

 


 

▲ 야외전시장에는 나무로 만든 닻이 전시되고 있었다.

 

 

 

수중문화유산이란 바다나 강·호수·늪지 등 물에 잠겨져 있는 인류의 문화유산을 말한다.

수중문화유산에는

지진으로 물에 잠겨버린 인류의 정착지나

교역·어로활동·해전등 해상활동에서 침몰된 선박과 그 선적물 등이 있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3백만 척의 난파선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지진으로 잠긴 지중해 알렉산드리아 등대(14세기), 자마이카 포트 로얄 고대 도시(17세기) 등 수많은 인류 정착지도 물 속에 잠겨 있다.

 

수중문화유산은 육상의 문화유산보다

보존이 잘 되어

한시대의 문화현상 단면을 뚜렷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더욱 가치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수중문화재와 수중고고학에 대한 관심은 1976년 신안해저문화재 발굴조사를 계기로 시작되었다.

신안해저발굴 이후

10여건에 이르는 수중문화재 발굴조사는

우리 해양역사와 문화를 복원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 청자향로의 파편들이다.

 

 

▲ 청자구름.봉황무늬대접(고려14세기) 무안도리포해저에서 발견되었다.

 

 

 

 글.사진인용; 목포 국립해양유물전시관

완도해저 고려청자는 11세기 후반경에 만들어진 녹청자계통의 도자기이다.

도자기의 특징과 발견된 지점으로 보아 실생활용 그릇으로 추정된다.

도자기 종류는 대접과 접시, 완, 잔 등이 대부분이며, 청자광구병(廣口甁) 103점과 청자매병 11점, 그리고 청자장구 2점,

유병(油甁), 호(壺), 발(鉢) 등이 있다.

도자기는 전남 해남군 산이면 진산리에서 생산된 것으로 보인다.

 

진산리 가마터는 고려시대 대표적인 녹청자 생산지로서, 1983년 가마터 104기가 조사되었다.

해남 진산리는 내륙과 바다, 영산강의 자유로운 해운교통 조건을 갖추고 있어 도자기 수송에 매우 유리한 지역이다.

 

완도선은 이곳에서 도자기를 가득 싣고 진도와 해남 땅끝,

완도 본섬을 지나

남해안으로 항해하다 약산도 앞 바다에서 침몰한 것으로 추정된다.

 


 

 

 

▲ 신주(중국.북송960~1127)

중국 북송때 고려에 사신을 보내기 위해 제작한 배이다.

중국사신 서긍과 사절단은 신주 2척과 객주 6척을 타고 고려에 왔다고 전해온다.

 

 

 

           

                                                                             ▲ 신안선은 중세 중국과 일본 간의 무역선이다.

 

14세기는 우리나라는 고려왕조, 중국은 원(元)왕조, 일본은 가마쿠라막부시대로서,

활발한 교역이 이뤄지는 시대였다.

 

1323년 여름, 신안선은 당시 중국의 무역항 경원(慶元 ; 현재의 영파)에서 수만점의 무역품을 싣고 일본을 향해 출항하였다.

최종목적지는 일본 교토(京都)에 있는 사찰 동복사(東福寺)였다.

 

서남계절풍을 이용해 고려해역을 지나는 국제 교역항로인 남로(南路)를 따라 항해하였다.

그러나, 약 700년후 신안선은

일본이 아닌 우리나라 전남 신안 해저에서 발견되었다.

 

아마도 신안선이 항해 중 태풍을 만나 우리나라 서남해안을 표류하다가 침몰한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 분석결과, 신안선에 승선한 사람들은

중국인 선원과 일본인 무역품 주인 또는 그 대리인 등으로 추정된다.

 

침몰선은 발견지역을 따라 신안선이라

부르고 있으며

700년간의 역사적 비밀은 배와 함께 발굴된 유물을 통해서 밝혀졌다.


 

 

 

이 전시실은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우리 배의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배는 선사시대 바위그림과 같이

고기잡이 도구이자 바다를 건너 이동하는 획기적인 도구이다.

 

우리 조상들은 고대부터 바닷길을

 개척하였으며

이렇게 오랜세월 축적된 지혜와 기술이 우리 전통배 '한선'이다.

 

 

 

▲ 조선통신사선(조선.1607~1811년)

약 200년동안 12회에 걸쳐 사신을 싣고 일본을 오가던 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