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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 석조관음보살입상

노루귀사랑 2010. 8. 16. 09:31

 

 율리석조관음보살입상

소재지; 충북 증평군 증평읍 율리 산77번지(충북문화재자료 제36호) 

 

찾기가 그리 녹녹하지 않은 율리 석조관음보살입상이다.

하지만 삼기저수지만 기억하면.....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율리 마을에 있는 관음보살입상으로 머리에 높은 보관을 쓰고 있는 모습이다.

지금은 마멸이 심하고

특히 얼굴 부분에는

 인위적인 손상을 입어 얼굴을 살펴볼 수 없는 아쉬움이 있다.


 

 

 

 

 

머리칼은 보관에 가려져 형태를 알 수 없고 양쪽 귀는 길게 늘어져 어깨까지 닿아 있다.

보관의 아래 부분에는 굵은 띠가 둘러져 있고

정면에는 둥근 장식이 있으나 문양은 손상되어 잘 알 수 없다.

 

목은 매우 짧으나

삼도의 흔적이 보이고 어깨는 당당한 편이다.

 

 

몸체는 전체적으로 육중하고 양감이 풍부하여 원만한 인상을 풍기는데

얼굴과 신체 각부 조각도

본래는 잘 되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손모양은 오른손은 가슴에 얹고 왼손은 늘어 뜨렸다.

입고 있는 옷은 양어깨를 모두 감싼 통견으로 양쪽 다리에는 각기 밀착된 옷주름이 늘어져 있다.

 

 

상의 뒷면은 다듬기만 하고 옷주름의 표현은 전혀 없다.

불상의 발 부분에는

현재 시멘트로 만들어진 받침돌에 묻혀 있어 조각 형태를 알 수 없는 실정이다.


 

 

이 석불에 대한 문헌의 기록이 전혀 없어 자세한 내력이나 조성경위는 전혀 알 수 없다.

 

마을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원래는 이보다 아래쪽에 있었는데

 1979년 삼기저수지 건설로 수몰되게 되자 현재 위치로 옮겨 놓은 것이라고 한다.

 

원래의 위치에 있을 때에는 불상의 둘레에 돌담이 둘러져 있었으며

현재 불상 옆에 있는 지붕돌 모양의 돌이 돌담을 의지해 불상의 머리 위에 올려져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불상과 지붕돌 모양의

돌의 규모를 비교해 보면

머리 위에 이 돌이 올려지기에는 균형이 맞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불상을 옮길 당시에 불상의 밑에서 다듬지 않은 편평한 돌에 시주자와 불상을 만든 석수의 이름

 연도를 새긴 돌이 나왔다고 하나 현재는 찾을 수 없다.

 

불상이 만들어진 때를 조선 숙종 30년(1704)으로 추정하기도 하나

불상의 조각 양식이

조선 후기보다는

 훨씬 이른 고려시대 후기 정도로 보인다.

이 불상은 고려시대의 불상으로서

충북 지방에서 많이 보이는 관모를 쓴 조각 양식상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글인용; http://pr.korean.net,문화재청 문화재정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