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한국적인..../한국의 문화재

여주 고달사지(高達寺址)

노루귀사랑 2008. 5. 17. 20:05

 

 

고달사지(高達寺址) 소재지; 경기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 산 47-1(사적 제382호)

요즘에는 불교신자가 아니더라도 문화재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 답사등을 통해 많은 유적지로 찾아나섭니다.

저도 그 중의 한명이지만 특히나 폐사지를 좋아합니다.

정형화된 절집의 구조보다는 그 구조가 없어진 자리에

남아있는 석재들을 보며 그 시절을 억측(?)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유 홍준선생도 폐사지 답사를 가장 고급스런 답사 여행이라고 말씀하신것이 생각납니다.

 

 

 

고달사는 통일신라시대 경덕왕 23년(764)에 창건된 절로,

누구에 의해 창건되었는지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고려 광종 이후에는 왕들의 보호를 받아 큰 사찰로서의 면모를 유지하기도 하였으나,

언제 폐사되었는지도 분명하지 않다고 합니다.
넓은 터를 차지하고 있는 이 고달사가 융성했을때의 화려함 만큼이나 허허로움이 밀려왔습니다.

 

 

 

고달사지 석불좌(보물 제8호) 

불대좌는 윗면에 부처님을 모셨던 일종의 받침입니다.

이 석죄는 고려 초기의 석불대좌로 수작에 속한다고 합니다.

 

 

받침돌은 3단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3개의 돌을 각기 다듬어 놓았습니다.

 연꽃잎을 서로 대칭되게 돌려 새겨서 유연한 느낌과 안정된 느낌을 잘 표현하였습니다.

 

 

원종대사 혜진탑비 귀부 및 이수(보물 제6호) 

혜진탑비의 이수~~~정말 대단합니다.

정교하게 새긴 용의 문양이 생동감이 있고 살아 올라갈것 같은 번뜩임에

그만 넋을 잃고 한참을 쳐다봅니다.

아마도 옆지기가 부르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그만 얼어 버렸을것만 같습니다.

 

 

반룡이 엉켜있는 모습입니다.

마치 화강암에 새긴 문양이 아니라

대리석위에 정교한 솜씨도 조각을 해둔것 같은 착각이 일어납니다.

고란이란 석공은 대단한 사람인듯 합니다.

 

 

여기에는 비몸이 없습니다.

비몸이 깨어진 채로 경복궁으로 옮겨져 진열되어 있다고 합니다.

예전에 경복궁에 갔을때 제대로 살피지 못했으니

다음에 한 번 가 보아야겠습니다.

 

 

 

 

고달사지 부도(국보 제4호)입니다.

지붕돌을 한번 보셔요^^

하늘로 날아갈듯한 날렵한 선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상륜부가 조금 훼손된것 말고는 온전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사리를 모셔둔 탑몸돌에는 문짝 모양과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원종대사 혜진탑비 귀부의 ��쪽으로 올라가다보면

누구의 탑비인지는 모르나

  이렇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귀부의 머리도 잘려나가고 비좌도 깨져 있었습니다.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보물 제282호)                 

                  
 

소재지;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1번지 경복궁

 


 

고달사지쌍사자석등은 고달사지에 넘어져 있던 것을 주민이 수습하여 보관하다가,

1958년 5월 서울시 종로구 종로 4가 동원예식장 뒤뜰로 옮겼졌습니다.

 1959년 봄 당시 문교부의 주선으로 경복궁 경회루 옆에 옮겨졌다가 현재의 장소로 이동되어 복원하였습니다.

 이 석등은 통일신라의 쌍사자석등과는 달리 사자들이 서 있는 입상이 아니라

엎드려 있어 간주석이 아닌 하대석의 역할을 하고 있는 점이 특징입니다.

구성은 지대석·하대석·중대석·상대석·화사석·옥개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석등은 이 같은 조각 수법 등으로 볼 때 고려 초기인 10세기 무렵에 만든 것으로 추정됩니다.

(쌍사자석등사진,자료출처 http://sca.visitseoul.net/korean/)

 

 

▲ 현재도 고달사지는 계속적으로 발굴하고 있습니다.

자그마한 돌맹이 하나라도

그 자리에 두어야만 아름답게 복원될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찾아가는길 경부고속도로-영동고속도로->여주IC->여주,양평방면(국도 37번)->이포사거리->고달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