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신륵사(神勒寺)
신륵사(神勒寺)
소재지;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천송리 282번지
남한강의 물길 따라 강가에 발달한 도시인
여주에는 구석기 시대가 있으며 우리나라의 역사에 중심에 있습니다. 특히나 퇴적층의 발달로 평야와 도자기산업이 발달하였습니다.
이번 여행은 못다 둘러본 여주를 택하였습니다.
어느날 어느 집사님이 묻더라구요.
"집사님! 강가에 모래사장과 강이 내려다 보이는곳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왔는데 그 절이 어디인지 아시나요?"
우리때와는 달리
설악산이 아닌곳으로 수학여행을 하셨나?...... 아무리 생각해도 알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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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신륵사의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그 집사님께 전화를 하고 싶었습니다. 아름다운 여주의 땅 그리고 신륵사!!!
그 분이 말씀 하신 곳이 바로 여주 신륵사였습니다.
남한강의 명물 황포돛배 입니다.
여주도자기축제입니다.
작년에 다녀와서 올해는 통과였습니다.
봉미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 신륵사는 신라 진평왕때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나 정확하지 않습니다.
신륵사는 보은사 또는 벽사(璧寺)라고도 불렀다고 합니다.
지금도 이곳의 어르신들은 벽사라고 합니다.
아마도 다층전탑이 자리하고 있어 그렇게 부른듯 합니다.
신륵사 일주문 입니다.
범종각입니다.
보물 제180호인 조사당 입니다.
신륵사에서 가장 오래된 전각으로 입니다.
정면 1칸, 측면 1칸의 겹처마 팔작 지붕의 구조입니다.
조선초기의 건축 양식입니다.
현재 신륵사 조사당에는 고려말 지공,나옹, 무학스님의 영정이 있으며
목조로된 나옹화상의 상이 봉안 되어 있습니다.
나옹선사는 우리가 잘아는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이 분입니다.^^*
문루인 구용루입니다.
조금은 벗겨진 단청이 무척 마음에 듭니다.
극락보전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8호입니다.
정면3칸, 측면2칸의
다포 양식으로
조선후기 건물의 특징이 잘 나타납니다.
극락보전은 1678년(숙종 4) 중건된 이후 1797년(정조 21)에 중수되기 시작하여 1800년(정조 24)에 완공되었다 합니다.
관음전이네요^^
명부전입니다.
1929년 강 성인스님이 중건하였다고 합니다.
2기의 부도탑입니다.
근데 어느 분의 부도인지는 설명이 없었습니다.
사람같이 생긴건 굴뚝이라고 합니다.
아주 특별하게 생겼습니다.
만드는 분의 해학과 익살 그리고 여유가 좋아보였습니다.
500년된 향나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나무들은 굉장히 장수하는 나무들이 많습니다.
행여 이 향나무도 어느 스님의 지팡이인가요^^*
하지만 그런 설명이 없는것을 보면 그런 전설은 없는가 봅니다.
신륵사 다층석탑(보물 제225호)입니다.
아~~~말이 필요없습니다.
이리 아름다운 문양은 일찌기 본적이 없습니다.
조선시대의 석탑으로 화강암이 아닌 대리석을 재료로 사용한 것이 특징입니다.
아마도 강가에 있어 타국에서 대리석을 들여 오기가 수월하였을것 같습니다.
만일 우리나라가 화강암의 나라가 아닌 대리석의 나라였다면 훨씬 아름다운 세부조각 작품들이 많이 나왔겠지요^^
아무리 둘러보아도 아름답기 그지 없습니다.
조선 초기 공예의 면모를 살피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탑의 몸체 4면에는 구름과 용무늬를 세밀하게 조각하였습니다.
특히나
용의 눈이 그대로 새겨진 점등은 다른 석탑에서
보지 못한 너무나 아름다운 문양이었습니다.
세밀한 문양과 조각을 한번 둘러 보면 좋겠습니다.
상륜부는 전(塼)으로 된 노반위에
화강석으로 된 복발,앙화,보륜,보개등이 남아 있습니다.
강월헌옆의 나옹선사의 다비장소를 기념한
문화재자료 제133호인
3층 석탑입니다.
왜 강가에다 전탑을 세웠나?
풍수지리학상 물의 기운을 누르기 위하여 전탑을 세웠으며
또한 남한강 물길을 오르내리던 뱃사공들의 안전을 지켜주는 수호신의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여주는 명성황후를 비롯해 9명의 왕비를 낸 곳이기도 합니다.
대장각기비(보물 제230호)입니다.
고려말 목은 이색이 공민왕과 부모의 명을 빌고자 나옹의 문도와 함께 발원하여 대장경을 인출하고
대장각을 지어봉안한 사실을 기록하여 세운 것으로서
비문은 이숭인이 지었고 글씨는 권수가 썼다고 합니다.
조선 철종때 신륵사를 중건한
당시의 호조 판서 김 병익공덕비 입니다.
조사당옆으로 구릉을 오르면 소나무숲사이의 아늑한 곳에 보제존자 나옹화상의 사리를 봉안한 부도가 있습니다.
흔히 지나치기 쉬운 위치이라 잘 살펴야 합니다.
조사당에서 멀지 않은 거리인 만큼 반드시 둘러 보아야 할곳이지요.
보제존자 석종비(나옹화상 부도비, 보물 제229호)
보제존자 석종부도(나옹화상 부도, 보물 제228호)
단층 기단위에 2단의 받침을 둔 후 종 모양의 탑신을 올린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양 옆으로 무지개 계단을 두었으며 꼭대기에는 보주가 있습니다.
고려 우왕 5년(1379)에 세웠으며 나옹이 양주 회암사 주지로 있다가 왕의 명으로 밀양에 가던 도중
이곳 신륵사에서 입적하여
제자들이 절 뒤에 터를 마련하여 이 탑을 세워 두었다고 합니다.
신륵사보제존자석종앞석등(보물 제231호)
이 석등이 기가 막힙니다.
전체적으로는 화강암이 주재료로 사용되었지만
화사석은 대리석을 사용하여 조각을 아주 세밀하고 화려하게 하였습니다.
그 문양이 너무나 정밀하고 아름다워 감히 눈을 떼지 못합니다.
고려말기의 대표적 작품입니다.
비천 또는 용을 새겨
매우 화려하고 정교한 양식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신륵사를 한시간 이상 소개해주신
경기도 문화유산 해설사님인 백 명옥선생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단체가 되어야만 해설이 가능하지만 쉬는 시간에 자세하고 성의 있는 해설을 해 주셔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달랑 커피 한 잔을 건네기가 무척 미안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함을 전합니다.
찾아가는길 경부,중부고속도로->영동고속도로->여주TG->시내방향(우회전,37번국도)->여주대교->신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