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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군과 왜병의 선봉부대가 최초로 싸운 상주 임란북천전적지•─삶이 머문 여행/경상북(慶尙北) 2012. 12. 4. 08:20
조선 중앙군과
왜병의 선봉주력부대가 최초로 싸운 장소에 세운 호국성지
임란북천전적지
경북 상주시 만산동 699번지(지방문화재 기념물 제77호)
천봉산을 내려와서 산행들머리에 있던 임란북천전적지를 들렀다.
상주에 오랜 시간을 다니면서도
한 번도 들리지 못했던 임란북천전적지는
임진왜란때 조선 중앙군과 왜병의 선봉주력부대가 최초로 싸운 장소로 900여 명이 순국한 호국성지이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일(李鎰)을 순찰사로 임명하여
상주 북방 북천에 진을 치고
고니시가 이끄는 왜병 1만 7천 여명에 대항하였으나 패하였다.
이곳에는 순국한 9위를 배향하고 있는데종사관 윤섬, 이경류, 박호 등 중앙군과 판관 권길, 사근도찰방 김종무, 호장 박걸, 의병장 김준신,
김일과 무명용사 1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1990년부터 정화사업을 실시하여 임란북천전적비를 건립하는 등 역사의 산교육장으로 조성하였다.
임란북천전적지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중앙군과 향군이 왜군의 주력부대와 회전하여 900여 명이
분연히 순국한 호국의 성지로
1592년 4월 13일 왜군이 부산에 상륙하자
이를 막기 위해 급히 남하하여
4월23일 상주에 도착한 조선의 중앙군 약 60여 명과
상주판관 권길, 호장 박걸이 밤 새워 소집한 장정 800여 명 등 900여 명이 17,000여 명이나 되는 왜병과 분전하여 전원이 순국한 곳이다.
이로 인하여 선조대왕으로부터
상주 전역에 복호(조세 부역의 면제)의 은전을 입은 전국의 유일한 지방이기도 하다.
(관련글인용;문화재청,상주시청)△ 태평루
△ 충렬사 유허비및 순국비
△ 경절문
△ 비각(碑閣)
임진왜란 당시 북천전투에서 순국하신 3충신 윤섬,박호,이경류와 김준신,김일의사
그리고 상주목관 권길의 충절을 새긴 비석이다.
△ 자양재
△ 임란기념관
왠지 기념관이란 말이 귀에 거슬린다.
다른 말로 바꾸면 좋지 않을까...예를 들면 임란유적관이나 임란유물관이면 좋지 않을까?
딱히 기념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여하튼 안으로 들어가본다.
△ 교지 이조만년 31년
△ 교지 이조만력 28년
△ 충의문(忠義門)
△ 사우인 충렬사
종사관 윤섬, 이경류, 박호 등 중앙군과 판관 권길, 사근도찰방 김종무, 호장 박걸, 의병장 김준신,
김일과 무명용사 1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 임란북천전적비
△ 침천정(枕泉亭)
조선 선조10년(1577) 상주목사 정곤수가 건립한 정자로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12년 중건하였다.
△ 상산관(경북유형문화재 제157호)
조선시대 임금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시고
초하루와 보름에 제사를 지내며 중앙에서 파견된 사신이 머무르던 상주목의 객사이다.
고려시대에 지어진 건물로 조선 중종 21년(1526)에 화재를 입어 고쳐지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또다시 불타 선조 39년(1606)에 다시 세웠다.
원래의 위치는 지금의 동성동 상주경찰서 자리였으나 1940년에 옮겨져 상주여자중학교의 교실로 사용되었다.
그 후 다시 만산동으로 옮겨졌다.
가운데에 본관을 두고 양쪽에 동익헌·서익헌이 붙어 있다.
본관은 앞면 3칸·옆면 3칸이고,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동익헌은 앞면 7칸·옆면 3칸으로 본관쪽 지붕은 본관과 같은 맞배지붕이고 동쪽은 옆면이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서익헌은 앞면 4칸·옆면 3칸으로
동익헌과 같이 본관쪽은 맞배지붕이고, 서쪽은 팔작지붕이다.
상주 상산관은현존하는 건물로는 남부지방 최대의 규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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